영혼의 뜨락
2021.01.15 10:35

기분 좋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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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연희 크리스티나 시인

가끔 학생 미사에 참례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학생 수는 조금 줄어든 것 같으나 여전히 순수한 활기가 있어 좋다. 강론 시간이 되어 신부님께서 초등학생들에게 질문하였다. 


“여러분들이 부모님에게서 자주 듣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공부해라” “게임 그만해라” “씻어라” “밥 먹어라”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대답했다. 신부님이 다시 물으셨다. 


“부모님들이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지는 않습니까?” 그러자 아이들은 묵묵부답이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부모가 되었을 때 자녀들에게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랬더니 이구동성으로 크게 “공부해라입니다.” 하여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신부님께서 부모님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씀하신다. 


“자 들으셨지요. 누구 하나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사랑이고 성서는 온통 사랑으로 채워져 있고 성당에 올 때마다 사랑을 묵상하고 실천하겠다고 다짐할 텐데 정작 자녀들에게는 왜 그렇게 인색하십니까? 여러분들이 실천하지 않는 사랑을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겠습니까. 성서에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새겨야 합니다.”


나는 순간 장침 한 방 맞은 듯 뜨끔했다. 자녀들에게 마치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양 몰아세우지는 않았나 반성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 나이에도 지나간 잘못은 그저 사랑과 자비로 이해하고 잘못은 잊어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조하리의 창(Johari window)을 떠올리며 가정에서 비롯되는 작은 일의 실천이 인격 형성에 기본임을 짚어본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심란하여 주님의 섭리를 자주 생각한다. 질병과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빠지면 경계가 없다. 무능함에 언택트untect에서 영靈택트(soultect)의 시간을 갖자고 다짐하니 불현듯 천국 가신 어머님 생각이 난다. 살아생전 새벽에 일어나면 가톨릭 기도서 한 권을 다 읽으며 흩트림 없이 꾸준히 바치셨던 모습. 나도 새벽잠을 설치고 성당에서 받아온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기도문을 바친다. ‘희망의 근원이신 하느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세상의 유혹을 거슬러 용기를 내고 자비의 삶을 살아 희년의 기쁨을 살게 하소서’ 마음 모아 소리 내어 또 읽는다. 아니다 외운다.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기도는 사랑의 힘인 것을 온몸으로 느껴 주님과 함께함은 행복하다. 통기타 가수 김세환이 부른 노래를 떠올린다. “천만 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사랑해” 말을 해도 기분이 좋고, 들어도 기분이 좋은 말 ‘사랑해’를 새해에는 언제나 웃는 꽃처럼 피워 마음이 담긴 말에서부터 사랑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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