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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5 16:24

아리랑. 겪어내고, 살아내며, 피워내는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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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제 영혼은 불행으로 가득 차고 제 목숨은 저승에 다다랐습니다.
저는 구렁으로 내려가는 이들과 함께 헤아려지고
기운이 다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저는 죽은 이들 사이에 버려져
마치 무덤에 누워 있는 살해된 자들과 같습니다. 
당신께서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어
당신의 손길에서 떨어져 나간 저들처럼 되었습니다. -시편 88,4-6


고통이 한가득한 탄원의 노래, 가장 순수한 기도이며 가슴을 에는 애원입니다.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시달리는 극심한 고통은 욥의 기도를 닮았습니다.


제 영은 산산이 부서지고 제 수명은 다해 가니
저에게 남은 것은 무덤뿐.  -욥기 17,1


절망적 위기 속에서, 자신을 포기해 버리고 자신에게서 감추어진 분이신 하느님께 부르짖지만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합니다. 완전한 어둠과 하느님의 침묵 속에서 그는 영혼의 깊은 어둔 밤을 겪습니다. ‘가장 암울한’, ‘부재하시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러나 주님, 저는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아침에 저의 기도가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시편 88,14


그럼에도, 모든 고통의 원인이 하느님께 있음을 알고 주어진 것을 수용해냅니다. 용기는 두려움으로부터, 희망은 절망으로부터 솟아나며, 기도는 절정의 고통 속에서 간절해집니다.


찬바람 겪어내고 ‘나’를 피워내는 매화
울지 말거라. 아버지는 죄를 짓지 않으셨니라. 믿음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니라. 천주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길을 가셨니라. 예수님은 죄 없이도 매 맞으셨고 죄 없이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니라. 
천주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아요. 예수님을 보내 깨우쳐 주신 것이 다 우리에게 은총을 담아서 준 선물 바구니예요. 바구니는 절대로 비어 있지 않고 영혼의 꿀과 빵을 채워 주셔요. 기도하셔요.

-강희근. 시극, 순교자의 딸 유섬이. 첫째마당


아버지에게서 철저하게 버려진 것 같은 십자가 위에서도, 예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 아버지와의 관계를 쥐고 기도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것 봐라. 겨울초는 겨울이라도 몸을 밖으로 내밀며 의연히 자라고 있다. 신기하지 않아? / 네, 신기해요… 초남이 우리 어머니는 풀 하나 잎 하나에도 신의 입김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 그래, 입김이 있다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닌 것에서 생명이 나오고 지켜진다는 말일 거야.  -둘째마당


신께서 부여한 입김으로 생명을 입은 존재, 그 근원적 힘을 우리는 잃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그 힘을 잊지 않는 이상, 우리는 살아있게 됩니다. 


골무는 그냥 골무가 아니니라. 일하는 이의 도구요 정신이니라. 정신 하나로 아녀자는 일생을 사는 법이니라.     -셋째마당


삶의 심지가 되는 정신은, 사소한 도구 하나도 정신이 깃든 도구로 변모시킵니다.


옥과 눈처럼 청진한 마음이 되는 것이 매화의 진실이라는 것,


매화는 저 자리에 저리 피어 있지만
바라보는 이가 여인이면 여인으로 피고
바라보는 이가 아리따우면 아리따움으로 피고
바라보는 이가 봄이면 봄 아침으로 피고
바라보는 이가 그리움이면 그리움의 저녁으로 피네.  -셋째마당


그 정신은, “보시니 좋았다”던 근원자의 시선이 되어, 옥과 눈처럼 청진한 마음을 아리따움으로, 봄으로, 그리움으로 피워냅니다.


아리랑 고개를 그리스도교의 용어로 번역하면 골고타라고 할 수 있다. 그곳은 우리 민족의 고대 사회에서는 백성이 하느님(천제)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고, 하늘에서 하느님의 아들이 강림하는 곳이다. 골고타는 새 생명이 나타나는 곳, 바로 그리스도교의 아리랑 고개라고 할 수 있다.
아리랑은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하여 겪는 모든 것을 노래한다. 새 생명의 탄생이 이루어지기까지 사랑이 겪는 고난과 투쟁, 의지와 희망을 노래한다.
시편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느라고 겪은 고난과 투쟁, 구원과 희망, 하느님과의 사랑과 교제의 역정을 노래한 온갖 시의 집대성이다. 이집트라는 죽음의 세계에 들어가 죽음을 겪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죽음과 부활의 원형을 형성하는 하나의 노래, 아리랑이다.
갈망과 기다림, 꿈을 꾸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고난, 즉 버림받음, 분리, 억압, 빼앗김, 박해, 수모, 생명의 위협이 있는 세상에서는 아리랑이 불려질 수밖에 없다.     -조태영, 시편에서 듣는 아리랑


깊은 영혼의 깊은 향기는 주변을 탓하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정신을 노래하며, 모든 상황, 모든 것 앞에서 밝음과 맑음을 드러냅니다.


매화가 찬바람 이겨 내며 저리 핀 것은
찬바람 이겨 내게 힘을 주신 분
그분의 깊은 뜻 향기로 살피라 하심입니다.
찬 서리 걷어 내게 힘을 주신 분
그분의 높은 뜻 속 깊이 기리라 하심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영혼을 주신 분
영혼의 눈으로 꽃피는 소리 들으라 하심입니다.  -유섬이. 셋째마당


기도하셔요.
정신을 잊지 않고, 살려내며, ‘나’를 꽃피우도록.

 

210228 4면 백그라운드(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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