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사순 제1주일 강론

posted Feb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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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정진국 바오로 신부

제 폰은 IP68 등급입니다

 

한 줌 흙으로, 흩날리는 재로 돌아가야 하는 미천한 존재인 우리의 나약함을 깨달으며 시작하는 
사순의 첫 주일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주님이 받으신 세 가지 유혹에 대해 전합니다.


상징성 짙은 40주야의 단식을 끝낸 주님 앞에 유혹자는 빵과 명예와 권력의 달콤함을 내밉니다. 저라면 낚시바늘 숨어있는 지렁이인 줄 모른 채 호숫가 먹성 좋은 베스마냥 한입에 꿀꺽 삼킬 유혹을 주님은 이겨내십니다.


물론 유혹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유혹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유혹은 선택을 요구합니다. 선악과를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빵을 고를지 하느님의 말씀을 택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혹당함과 선택할 수 있음은 나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졌음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시간이 선택의 기로이며 유혹의 순간입니다. 또한 유혹은 처음부터 거창하게 부담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 “이 정도 쯤이야!” “나만 그런가!” 하는 식으로 내게 다가옵니다. 서있다 보면 앉고 싶고, 앉아있다 보면 눕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유혹자는 처음부터 소를 훔치라 하지 않고 작은 바늘 하나쯤은 가져도 된다고 현혹합니다.


그래서 유혹은 늪과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발바닥이 젖고, 얼마 뒤에는 발목 깊이 정도로 빠져들어도 위험을 느끼지 못합니다. 점점 깊이 빠져듦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이 정도는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다고 자만하다 마침내 늪 바닥 아래로 가라앉게 됩니다.


IP68, 요즘 휴대폰이나 스마트워치의 방진 방수 성능입니다. 물론 제 폰도 보호등급은 IP68의 최신형 폰입니다. 앞자리 6은 먼지가 흡입되지 않는 일상 전기 전자제품의 최고 방진 성능을, 뒷자리 8은 1.5미터 깊이의 수심에서 30분 정도 잠겨 있어도 물이 스며들지 않는 방수 성능을 뜻합니다. 과거 휴대폰의 물리적 방수 등급이 4나 5 정도였을 때에는 잠시 물에 젖는 정도는 견디어 내지만 실수로 물에 빠트리면 낭패를 겪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유혹의 비에 젖기도 하고 현혹의 물에 빠지기도 합니다. 유혹에 대항하는 우리 신앙의 등급이 3 이하에 머무른다면 사소한 유혹에도 걸려 넘어질 것이고, 4나 5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이런저런 일상적 유혹을 잘 견디어 내다가도 순간의 실수 한 번만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8단계 경지의 유혹에 대한 저항력을 지닌다면 좋겠지만 적어도 6이나 7 정도의 유혹 내성은 지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쓰는 폰이 IP68이라면 악에 대한 저항성과 유혹에 대한 내성도 68등급에 가까워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나의 의지, 나의 노력만으로는 분명 부족할 겁니다. 그러니 유혹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가 아니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시기를 청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