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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용태 마태오 신부/ 대전교구

“얼짱!” ‘얼굴’이란 말과 최고를 뜻하는 ‘짱’이란 말을 합성한 단어다. 한마디로 얼굴 생김새가 예쁘거나 잘생겼다는 뜻이다. 내 생애에 절대 들어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 말을 얼마 전 피정 지도 중에 어느 자매님으로부터 들었다. 피정을 열심히 해서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였던 걸까?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말 한마디에도 이러니 진짜 ‘얼짱’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야 외모에 별로 신경 쓸 일이 없으니 ‘얼짱’이란 말이 그저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하지만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외모가 곧 힘인 ‘외모 지상주의’의 세상 속에서 ‘얼짱’이란 곧 최고의 ‘스펙’이 아닌가! 얼굴이 안 되면 공부라도 하고 공부를 못하면 얼굴이라도 돼야 한다는 어느 학교 선생님의 말씀은 이 시대에 ‘금언’과도 같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성형’을 하는 노력은 오늘날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열심히 공부하는 노력과 다르지 않은 거다. 교육 강국인 우리나라가 성형 수술 강국인 이유가 다 있다.


그야말로 ‘외모 지상주의’의 세상이다. 잘생기고 예쁜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세상인 것이다. 이는 얼굴 하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진 재산과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와 신용평가 등등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은 내면에 감춰진 것보다 더 중요하다.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22-23 참조) 등과 같은 무형의 가치들보다 훨씬 유용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가꾸기보다는 겉모습만 바라보며 겉치레에 더 애를 쓰게 된다. 이는 자신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그렇다. 사람의 됨됨이를 그저 겉으로 드러난 것들로 판단하는 것이다. 생김새, 타고 다니는 차, 살고 있는 집, 가족, 출신학교 등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런 세상에서 정직함, 진실함 같은 것은 설 자리가 없다. 있는 척하는 삶, ‘리얼리티’는 없고 ‘이미지’만 가득한 삶, 그야말로 “회칠한 무덤”(마태 23,27) 같은 거짓된 삶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외모 지상주의’가 ‘정보화’와 맞물려 그 폐해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심화된다는 사실이다. ‘정보화 시대’라고 불리는 요즘은 모든 것이 정보로 드러나고 분석되고 파악된다. 정보는 일반적으로 언론매체와 SNS 등을 통해서 노출되고 전파되는데 지면이나 화면을 통해 드러나는 온갖 정보들은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외모에 가깝다. 따라서 내면보다 외모에 집착하는 외모 지상주의처럼 이 시대 사람들은 노출된 정보를 접하면서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 그 자체에 더 주목하게 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문구와 사진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의 외모가 되어 버리고 그 외모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머리에 그대로 각인되어 남는다. 이 시대, ‘기레기’라고 불리는 부패한 언론세력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하면서 세상에 온갖 패악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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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세계 언론 신뢰도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언론은 ‘정보화’된 ‘외모 지상주의’를 사회 전반에 걸쳐서 고착화시키고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대표적인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신문과 TV와 각종 인터넷포털에 드러난 온갖 기사들은 언론사의 입맛에 따라서 외모가 달라져 ‘얼짱’이 되기도 하고 ‘얼꽝’이 되기도 한다. 화면과 지면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예수님과 부처님을 희대의 사기꾼으로 만들고 히틀러와 히로히토를 불세출의 영웅으로 만들 수 있는 언론은 이 나라 최고의 권력이다. 그래서 독재자들이 정권을 장악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언론을 길들이는 일이다. 언론을 통해 자신의 부당하고 불의한 모습을 그럴듯하게 치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중들은 이미 오랜 기간 외모 지상주의에 물들어 언론을 통해 노출되는 왜곡된 정보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그런 언론에 그럴듯하게 노출되고 싶어서 안달이니 부패한 언론과 독재 권력은 맘 놓고 온갖 패악질을 일삼는다. 그러고 보면 이 시대에 ‘거지 라자로’(루카 16,19-31 참조)가 ‘탐욕스런 부자’를 지지하고 그리스도를 향한 “호산나!”(마르 11,9.10)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르 15,13)로 돌변하는 참담한 현실도 모두 언론의 농간 때문이다.


결국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외모 지상주의’에 맞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의 소중한 가치’를 드러내고 ‘정보화 시대’에 맞서 ‘복음화 시대’를 여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의 소중한 가치와 이를 드러내는 복음은 반드시 ‘이미지’가 아닌 ‘리얼리티’로 선포되고 ‘생김새’가 아닌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 사람들이 그 참됨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선포하는 주님 부활의 증거는 ‘빈 무덤’(루카 24,1-12 참조)이 아니라 ‘부활을 믿는 우리의 삶’(사도 2,14-41 참조)이어야 하고, 우리가 믿는 부활의 주님은 ‘유령’(루카 24,37 참조) 같은 허상이 아니라 ‘살과 뼈’(루카 24,39 참조)처럼 우리 삶의 근간으로 육화되어야 하며,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감동적인 설교’가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위한 내 손발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상처’(요한 20,20 참조)로 생생하게 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역시 우리 교회가 들어야 할 최고의 칭찬은 “성당이 참 아름다워요!”가 아니라 “천주교는 뭔가 달라요!”라는 말이다. 지난 세월 많은 사람들이 명동성당을 좋아했던 이유는 사진 찍기 좋고 혼인하기 좋은 곳이어서가 아니라 최루탄과 경찰의 곤봉을 피해 숨어들 수 있었던 최후의 피난처여서가 아닌가! 그러니 ‘외모’는 ‘본질’을 가릴 수 없고 ‘말’은 ‘삶’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세상을 향해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출처 : 월간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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