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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성욱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좋은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드러났고, 교회가 그분의 삶을 유지하고 있으며, 세상 안에서도 그 삶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 공동체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예수님이 살았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그분의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애씁니다. 이를 ‘제자로 부름 받은 삶’ 혹은 ‘제자 됨의 삶’discipleship이라고 부릅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오늘은 은사님의 책, 『좋은 삶으로의 초대: 영성과 도덕성의 접점』(2018)의 다섯 번째 단원을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소제목이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입니다. 예상하셨겠지만, 루카복음 10장 37절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마지막 구절과 같습니다. 제자 됨의 길을 안내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성경 구절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르는 까닭은 단순히 규범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도 아니고, 죄가 될까 두려움에 휩싸여서도 아니며, 무엇보다 그분을 닮고 싶어서입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다음의 질문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다섯 가지 문장이 있습니다.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문장에는 O표를,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문장에는 X표를 표시해 봅시다.

 

· 예수님은 특정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좋아했다(   ). 

· 예수님의 삶에는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일이 어떻게 될지 언제나 확실히 아셨다(   ).

· 예수님의 사랑에도 성의 다양한 차원이 있었고, 성장기를 거치면서 고민을 하셨다(   ).

· 예수님도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친구의 돌봄이 도움이 되었다(   ).

· 예수님이 사막에서 받았던 유혹은 사명을 포기할 만큼 실질적인 유혹이었다(   ).

 

미사에 참석한 분들끼리 혹은 가족끼리 서로의 대답을 비교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실제로 저는 신학생들과 수업할 때, 혹은 본당에서 특강할 때 위의 질문들로 강의를 시작한 적이 많습니다. 종종 흥미롭고 재미있는 결과와 마주쳤습니다. 같은 본당 교우분인데도 대답은 다양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과를 함께 확인한 다음 저는 이렇게 질문하곤 합니다. “우리는 정녕 같은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란 말인가요?” “같은 세례를 받고 같은 신앙 공동체에 속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요?” “우리가 생각한 예수님은 왜 서로 달랐던 것일까요?” 

 

“우리는 같은 세례를 받고 같은 신앙 공동체에 속한 것이 아니었던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님이 다른 분이셨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님이 서로 달랐습니다. 하느님을 가까이 계신 하느님으로 체험했느냐, 멀리 계신 하느님으로 체험했느냐에 따라 우리 안에 자리 잡은 ‘하느님 상’image of God이 달랐던 것입니다. 교수 신부님 한 분은 신학교에 갓 들어온 1학년 신입생들에게 이런 요청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하느님의 상’을 우선 지워버려라!” “지금까지 하느님은 이런 분이시다고 생각했던 관념들을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 보자.” 

 

“동일한 하느님을 믿기도 했고, 그 후로는 동일한 하느님을 불신했습니다”

 

마커스 보그라는 분이 쓰신 『God We Never Knew』(『새로 만난 하느님』(2001)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됨)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한 번도 안 적이 없었던 하느님에 관해 생각하고 그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방식에 대해 기술”하기 위해 적은 책이라고 서문에서 소개합니다. 아주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았던 어린 시절 가졌던 ‘하느님에 대한 관념’이 조금씩은 수정되기는 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야 자신이 생각하던 하느님의 ‘상’像이 왜곡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문제가 아니었고, 내 안에 그려놨던 ‘내 하느님 상’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동일한 하느님을 믿기도 했고, 그 후로는 동일한 하느님을 불신했습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우리는 같은 하느님을 좋아하기도, 같은 하느님을 밀쳐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 안에도 예수님의 이미지를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브로드웨이 극장과 영화관에도 등장하고, 티셔츠 문구에도 등장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에 예수님이 넘쳐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미지가 넘쳐납니다. 이러한 대중문화 덕분에 예수님에 대한 통찰이 풍요롭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대신 우리는 어느 때보다 다음의 질문에 도전을 받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예수님이 인생에 어떤 분으로 다가왔는지, 그분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전해주는지 고백할 수 있을 때, 그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뜻은 단순히 법을 잘 지키는 시민이 된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뭔가 더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원수사랑’과 ‘환대’의 삶으로 도전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수’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이 사셨던 방식대로 그러나 각자의 자리에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는 말씀을 ‘창조적’으로 실천하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실천적인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잠시 기도수련의 시간을 가지면서, 좋은 삶의 모델이 되신 예수님께 제자 됨의 삶을 안내해 달라고 청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1)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는 말씀에 잠시 머물러 봅시다. 이어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겠느냐?”는 말씀 안에 잠시 머물러 봅시다. 각자 지니고 살아왔던 예수님의 상을 점검해 봅시다.

 

(2)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묘사하는 최고의 복음은 무엇입니까? 잠시 그 말씀에 머물러 봅시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자기 삶을 통해 성부께 충성을 다했듯, 오늘날 우리 각자도 그분의 제자로 성부께 충성을 다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안에서, 가족 구성원들 안에서, 일터에서 하느님께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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