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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재찬 안셀모 신부/ 분도 명상의 집

|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더 큰 사랑의 길: 내 힘으로 얻으려는 것은 망상이다

 

“신부님, 고해소 앞에서 성찰을 하고 있으면 지난번 고백한 죄와 똑같은 죄를 지은 한심한 저를 바라보게 됩니다.”


“매일 미사를 하고, 많은 기도를 바치고 있지만 저의 신앙생활은 늘 그 자리인 것 같고 오히려 요즘은 의무감으로 기도를 바치고 있는 듯합니다.” 

 

 

어느 날 그동안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면, 20년 혹은 30년 신자로 살았지만 늘 반복되는 죄를 짓고, 늘 같은 기도를 의무감으로 바치며 별로 성장이 없는 듯한 자신을 바라보며 회의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더 큰 사랑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 좁아진 듯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생활 초기의 열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모든 것이 무미건조해지고 아무런 감흥이 없는 사막과 같은 시간은 누구나 견디어 내야 할 하나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의 내면이 온전히 무너지는 듯한 날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심지어 기도조차도 할 수 없구나! 다른 이들을 사랑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것도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구나!” 사실 자신의 힘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 예수님의 사랑과 일치하겠다는 생각은 망상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게 되는 무너짐의 체험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이정표입니다. 영적 성장을 이루어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참된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바로 ‘항복 선언’입니다. “예수님,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항복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기 시작할 때 진정한 영적 변화를 위한 싹이 트기 시작하고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 항복 선언을 못하는 경우는 대부분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신앙생활에 대한 틀 속에 갇혀 있거나, 거짓 자아라는 우상에 집착하는 경우입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제대로 맡기지 못할 때 자아의 감옥 속에서 절망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늘 고해소에서 같은 죄를 반복하며 자신에 대해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구나!”라고 회의와 절망을 느끼며 고해성사 보기를 꺼리게 됩니다. 이 절망은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커다란 걸림돌입니다. 이 절망의 원인은 결국 ‘자기 사랑’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말합니다. “절망은 자기 사랑의 절대적 극치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감추어진 절망의 뿌리가 있습니다…. 절망은 자존심이 극도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강하고 완고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도움으로부터 행복을 얻음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 높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우리의 운명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파멸이라는 절대적 불행을 선택하게 됩니다.”(『새 명상의 씨』, 200)


이러한 절망의 뿌리를 뽑기 위해 필요한 성덕 가운데 하나는 ‘겸손’입니다. 머튼은 “완전한 겸손 안에서 모든 이기심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완전히 겸손한 영혼은 자기 혼자, 자기 힘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버리고 하느님 안에 잠겨 들어 하느님으로 변형됩니다”(『새 명상의 씨』, 201)라고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 더 큰 예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자아실현’을 위한 것도, ‘자기만족’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희망을 두고, 예수님의 완전한 겸손과 순종을 본받아 사랑의 신비 속에 자신의 오만과 자만심을 던져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망상이나 절망에 빠질 수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하느님 앞에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가를 깨닫기 시작할 때 참된 하늘의 기쁨이 내 삶에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처럼 고백하게 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 살든지 죽든지 나의 생활을 통틀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 1,20-21) 자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느님께 맡겨 드리며 ‘지금 여기’에서 매일매일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자아를 넘어’ 예수님을 통해 ‘자기-초월’의 좁은 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사랑은 자연스러워지고 일상은 평화로워집니다.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생각보다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오늘을 기쁨과 감사로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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