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가지면 여러 규율이 생긴다. 그 규율들은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 종교적 가르침에 얽매이게도 만든다. 한번 발들이면 세뇌되고 거기에서 나오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종교가 진화하면 그 통제 시스템도 발전하고 강화된다. 어느 종교이든 규제가 있을 수 있고 내가 속해 있는 교회도 규제와 규율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종교적 규율과 규칙을 강요할 때, 죄책감을 심어주기도, 받기도 한다. 생명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위해 가졌던 모든 집착과 환상을 버리고 해방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당신과의 관계 속에서 친밀한 친교를 맺고, 당신을 더욱 잘 알게 되길 원하신다. 자신을 내려놓고 당신을 따르라 초대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전적으로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된다.
그리스도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삶의 의미를 다루는 질문에 그 해답을 종교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이 그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된다. 예수님은 거대하고 보편적인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들을 다루는 것을 성경 말씀 안에 목격한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 말씀하신다.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은 규제나 세뇌가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해방의 가르침이며 또한 당신과의 관계 회복을 원하신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느냐 아니냐는 바로 나 자신만이 선택할 뿐이다. 종교적 전통과 도덕적 법규를 잘 지키고 그 규칙만을 따른다면 우리는 무거운 죄책감에서 짓눌리며, 살아가는 데 자유로울 수 없다.
바오로 사도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갈라 5,13)라고 선포하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완성되어 갈 수 있다. 바오로 사도가 체험한 그 관계는 세상의 방식대로가 아니라 예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위해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내려놓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 완전한 원래의 나를 되찾게 되는 것이라 가르치고 있다.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능력,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사랑의 능력은 나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주어져 있다. 하느님 관심의 대상은 우리의 사랑이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을 친밀히 알아야 제자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벽을 기대하시는 분이 아니다.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졌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선택하라는 것,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됨의 길에 우리는 초대되었다. 그 초대에 응답은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놓여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분을 인생의 최우선 사항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우선 사항으로 삼는 것이다.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은 그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님, 저희 모두가 당신을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