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2020.01.02 11:08

드러내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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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동방의 세 박사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의 별을 보고 그분을 찾아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경배하며 준비한 예물을 드리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경축합니다.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 나에게 당신을 주님으로 드러내셨으며, 나는 언제 그분을 주님으로 경배하였나?’

한 가지 일이 기억납니다. 성대서원(종신서원)을 앞두고 자발적으로 청원하는 기간이 다가왔을 때,

저의 내면은 공동체에 대한 판단, 불만, 비난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그동안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성소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의 실상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상태에서 나의 성소가 이곳에 있는 것인지 아닌지

Yes, No로 확실히 알려주시라는 기도를 드린 채 청원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원장수녀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성대서원에 대한 저의 의견을 물으셨고,

저의 상태를 표현하지 않으면서 공동체가 원한다면 살겠다는 의미로 성대서원 의지를 표명하였습니다.

그 후 원장수녀님께서 자문회의 결과를 알려주셨는데, 자문회 결정은 저의 성소는 있는데

성대서원은 연기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예상 외의 결과에 충격을 받은 저는 ‘성소가 있다’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이면서 자문회를 통해 주님께서 나의 성소가 있다는 대답을 확실하게 해주신 것으로 받아들였고,

자문회 결정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을 기도의 응답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에서는 성대서원이 연기되었다는 사실이 몹시도 모욕적이고 굴욕적이었습니다.

성무일도를 하면서 ‘왜 내가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나요?’라고 격노하며 마음속으로 고함을 고함을 질러대는데,

“자기가 마치 옳은 일을 한 백성이기나 하듯이”라는 시편 구절이 그와 동시에 속에서 울려 나왔습니다.

그 순간, ‘아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제 바로 곁에 예수님께서 저와 똑같이 발가벗겨진 상태로 십자가에 못박혀 계신 것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인 나와 똑같은 처지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나와 함께 고통을 당하신 분. 그분이 나의 구세주이셨습니다.

공동체를 통해 드러내시는 당신의 자비, 형제들의 자비에 저 자신을 내맡기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양 처신한 저의 근원적인 오만과 교만.

그것이 완전히 발가벗겨진 자리, 그곳이 주님께서 찾아와 당신 몸을 누이신 구유이며,

제가 땅에 엎디어 저의 주님임을 발견하고 고백하며 경배 드린 그 장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지금도 크게 작게 일상 안에서 여전히 계속 되고 있습니다. 

때론 드러내시며… 때로는 감추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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