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0.01.23 10:36

말씀에 의한 말씀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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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죽어가고 있다, 비명도 없이 결혼예식장에서, 장례식장에서, 졸업식장에서….

가톨릭 전례의 꽃인 거룩한 미사에서도 강론은 점점 줄어들고 심지어는 복음 낭독으로 그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왜 우리는 말씀을 거부하고 있는가?

 

주례사 비유라는 말은 문학 수사에서 공치사를 남발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하필 그날 굳이 안 좋은 말을 입에 올릴 일이 뭐가 있겠나 싶어 좋은 말만 나열하다 보면 뻔한 말이 3단 조화 같아지고 만다.

닳고 닳아버린 ‘졸업은 시작’이라는 말, 백 가지도 넘게 늘어놓는 철부지 신랑신부의 맹세는 더 이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함이 아닐까.

성당 나가는 것이 주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장식용 브로치 하나 달았다 떼었다 하는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지난해 3월 한 신부님 부친의 장례미사에 참석하였다.

평소 상주 신부님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식장의 반 정도는 신부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강론 추도는 이진수 신부님께서 하셨다.

“저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에 일생이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 신부에게 물었을 때 그는 담담하게 ‘거룩한 변용이었지’라고 했습니다.”라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셨다.

80평생 땅과 함께 사셨다가, 저녁 곡기를 조금 취하고 주무시듯 영면하셨다.

티볼산에서 예수님이 거룩하게 변모하셨듯이 잠드셨고 구름 속에 드셨다.

농부이자 공소회장님은 집(오이코스)을 사제관으로 쓰셨다.

구름 속으로, 하느님 안으로, 성도들 안으로 들어가셨고, 기도를 받으시는 것뿐만 아니라 장례식마저도 기도해 주고 계신 듯

‘요셉주보성인의 날’에 가시는 분은 정녕 기도하시는 분, 가르치시는 분이셨다 라고.

상주와의 우정, 사제로서의 죽음과 구원에 관한 생각을 절제된 언어로 알기 쉽게 들려주셨다.

 

뒤이어 전 가톨릭농민회 회장이었던 강기갑 의원도 간절하지만 간결하게 애도하셨다.

“고인은 평생 농부로 사신 분인데 그분의 농사는 씨앗, 가톨릭농민회운동과 자식, 이 세 가지였는데 다 잘되었습니다.”

 

죽어가는 말씀을 어찌 살려낼까 고민 중에 있었는데, 그날 뜻밖의 좋은 예시를 얻었다.

장례미사 식장은 좁아서… 조문객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

성체를 겨우 영하고 바깥으로 나오니, 문산성당 오래되고 잘 손질된 뜨락을 봄 햇살도 도탑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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