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2020.05.15 11:16

자가 격리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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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미사 안 합니꺼?”

“예 당분간 하지 않습니다.” 

“미사가 없다니!”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시대 초유의 사태 앞에서 인간은 나약하고 무능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당도 문을 잠가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집에 고립되었고 하느님도 성당 안에 자가 격리되신 것 같았습니다. 우리 성당 시계로는, 2월 25일부터 공동체 안에서 미사가 기약 없이 멈춰 버렸습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미사가 사라졌습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부활준비시기(사순절)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습니다. 본당에는 기저질환과 노환이 많은 노인 위주의 생림선교 공동체에서의 분위기와 체감 위험은 다른 본당과 달리 더 무겁게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활동이 집과 텃밭에서만 지내는 모습은 고립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마음도 없이 흘렀습니다.

 

‘한 보름이면 끝나겠지 하며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지…’ 하며 집에서 묵주기도와 조과와 만과를 바치는 것으로 예전의 습관, 초기 천주교회의 모습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확진자는 늘어가고 부활절 이후에야 미사가 재개된다는 소식을 평화방송과 신문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두 달 치의 달력이 종이처럼 그냥 떨어져 과거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부활이 지나고 다행히도 미사가 재개되었습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자습을 시켜놓고 잠시 교실을 떠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학생들은 세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잘 됐다 신나게 놀자, 다른 한 부류는 무관심하게 멍 때리고, 다른 한 부류는 선생님 말씀대로 열심히 자습하는 학생들입니다. 언제 오실지 몰랐지만, 자신이 알아서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나중에 나와 달라졌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가 격리된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없어지면 비로소 소중한 것이 보입니다. 지금 일상적인 것에 감사드립니다. 미사를 하는 이 당연한 고마움에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감사드림을 깨닫습니다. 아침에 눈 뜨는 것, 숨 쉬는 것, 움직이는 것, 잠을 청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 아래에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우리의 육신은 자가 격리될 수 있지만, 하느님 안에 기초한 신앙(마태 7,25)은 격리되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도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재차 체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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