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0.08.21 11:33

사라져 가는 것들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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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7년 전 늦은 여름에 돌아가셨다. 꿈도 현실도 아닌 것 같은 상황에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두 살짜리 작은애와 어린이집에 가 있던 큰아이를 찾아서 차에 태웠다.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는 해거름녘이었다. 마당을 쓸고 골목을 쓸고 마루를 대충 청소하고 나니 금세 어두워졌다. 거의 열 시가 넘어서 누나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한차례 엄마를 목 놓아 부르더니 수의를 챙겼고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떠났다. 

 

이튿날, 관할 지서에 들러 어머니 사망에 관한 서류들을 발급받을 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이미 화환이 입구까지 늘어서 있었다. 영정사진 속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고단했던 삶의 이면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을 찾는 사람들이 이어지자 큰누나가 넌지시 말했다. 나를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 오거든 나오고 아니면 그냥 방에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애가 있는 내가 그들 눈에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당시 중앙부처에 고위 공무원으로 있던 둘째 형 체면이 깎일 것 같아서 그랬는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었다. 오후에 입관식이 있었다. 열여덟 나이에 재 넘어 산마을에서 시집와 누나들을 낳고 형들을 낳고 나를 낳아 길렀던 어머니는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누워 있었다. 죽음이란 게 남겨진 이들에게나 슬픈 것이지 정작 어머니는 깊은 잠속에 빠진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아침에 운구차가 성당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시골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쓰러져 돌아가신 욕실 구석구석을 청소할 때 비로소 울음이 터졌다. 장지는 아버지 산소 옆이었다. 어머니가 다녔던 성당의 사목회장이 간단한 성서를 읽었고 성수를 뿌렸다. 관이 내려지고 제각기 삽에 흙을 떠서 뿌렸다.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간다고 했던 러시아 시인의 시처럼 아버지의 죽음도 어머니의 죽음도 바람처럼 지나갔다. 햇살이 따뜻했던 봄날 아버지 무덤가에서 어머니와 두런두런 나눴던 이야기, 초등학교 3학년 여름 심한 열병으로 의식이 없던 내가 어머니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가던 중 잠깐씩 눈을 뜨고 어머니의 땀 냄새를 맡았던 기억, 가을 코스모스가 곱게 핀 찻길을 따라 어머니와 걸었던 내 마지막 초등학교 운동회, 이 모든 것들을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살아오면서 늘 마음 아프고 슬펐던 기억들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나뿐일까?  

 

“저렇게 예쁜 새끼들 낳고 네 힘으로 살아가는 거 본께네 엄마는 인자 죽어도 편히 눈을 감겄다.”

어머니는 그렇게 떠나셨다.

 

200823 영혼의뜨락 이미지(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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