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2020.09.18 10:36

십자가, 그 사랑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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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악이 만연하고 고통받는 무죄한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늘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비정규직이나 일용노동자들과 같은 작은 이들의 일상의 고통에서부터 세월호나 큰 화재사건처럼 대형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며 동요하게 됩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나와 이웃의 억울한 일들과 세상의 악한 일들을 보며 우리는 많은 경우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질문하고 울부짖습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직에 오르시고 3월 29일 콜로세움에서 가진 십자가의 길에서 우리에게 큰 깨우침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세상의 악에게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많은 경우 하느님은 악에 대해서 대답을 주지 않으시고 침묵 가운데 계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느님은 실제로 말씀하셨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분의 대답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라는 말씀은 사랑이고 자비이며 용서입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와 아주 가까이 계시고 바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가르멜 수녀는 이런 십자가의 삶을 따라 살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위에서 세상을 위해 우리 자신을 바칩니다. 우리의 일은 세상의 그 모든 고통과 아픔을 가슴에 품고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그분과 함께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학자 몰트만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느님’이란 책에서 “누구든지 사랑할 능력이 있으면 또한 고통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말씀처럼 “가르멜 수녀에게 십자가 없는 하루는 잃어버린 하루”이듯이, 가르멜의 하루는 십자가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처럼 사랑이고 세상을 위한 봉헌입니다. 우리의 고통이 예수님의 고통과 일치될 때, 사랑 안에서 생겨난 우리의 고통이 특별한 속죄의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이 우리를 구원했듯이, 우리는 자신의 고통 안에서 그리스도의 협력자가 되어 그분의 구원사업에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나누는 행복한 사랑의 순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와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디종에서 살았던 가르멜 수녀인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은 이렇게 편지에 쓰고 있습니다. “가르멜 수녀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바라보는 영혼,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성부께 봉헌한 희생 제물인 그분을 관상하는 영혼,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이 거대한 신비 안으로 자신을 거둬들이며, 그분의 영혼이 간직한 사랑의 열정을 이해하고 그분처럼 자신을 내어 드리길 원하는 영혼입니다.” 

 

가르멜 수도회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몸이 없이 십자가 나무만 있습니다. 많은 신자분들이 객실에서 그런 십자가를 보고 묻습니다. 왜 그 십자가에 예수님이 안 계시냐고요? 이제는 우리 가르멜 수녀들이 사랑하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분의 십자가에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루의 일상이 힘겹게 우리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오늘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200920 09월 가르멜 주보 만화(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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