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0.10.23 10:22

지나고 나면 결국 웃어넘길 수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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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을이다. 이맘때쯤 주말이면 어김없이 등산 장비를 챙기고 가을 산행을 한다. 내가 가을 산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연이 주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도 있지만, 빛을 발하다 떨어진 낙엽들을 밟으며 올라선 산 정상에서 그동안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삶의 시간들을 묵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번뇌가 참 많았던 시간이었다. 직장에서 부장의 소임을 맡으며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았고, 다른 부서와 뜻이 맞지 않을 때면 의도치 않게 무례한 언행이 오가며 상대와 감정이 부딪히는 일도 종종 있었다. 사회적 위치가 내게 주는 무게감이 컸을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다. 그래서 내 기준에 맞춰 타인의 의견을 함부로 평가하고, 예민하게 나와 다른 이들을 배척했던 것 같다. 결국 모든 일은 잘 이루어졌지만, 서로 이해되지 않은 곳에는 미움의 흔적만이 자리했다.

 

자의식 과잉은 수많은 번뇌의 시작이라고 하는데,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내 안을 나로 가득 채웠던 것 같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가치와 관념에 스스로 사로잡혀 타인이 들어올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너와 나 사이에 놓인 ‘6’의 숫자가 내 입장에서는 ‘육(6)’이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구(9)’로 보일 수 있듯이, 내가 옳다고 하여 상대방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내 생각이 옳다면 상대의 생각도 옳다. 다만 내 이해 안에서의 방법과 다를 뿐이다. 만약 내가 상대의 관점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한 미움의 감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모든 일에는 누구나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 상대의 사정을 알게 되면 한때 나의 옳음이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섣불리 타인을 평가하거나 판단하기 전에, 반드시 나와 뜻이 맞지 않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설령 이야기를 들어도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지 못할 때는 차라리 내 마음에 상대에 대한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두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해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 삶의 문제들에 대한 뚜렷한 해답이 보이지 않으면 어떠한가. 인생의 거대한 항해를 하면서 노를 젓다가 놓쳐버리면, 오히려 더 넓은 물을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세상사 지나고 나면 결국은 다 웃어넘길 수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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