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1.08.12 14:20

실로암 주심에 감사합니다!

조회 수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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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선향 안젤라 시인

공간 한쪽에 작은 관상어 구피 네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틈틈이 들여다보고 물도 갈아주고 먹이도 주었다. 약간의 수초들 사이에 있다가 아침저녁 먹이 줄 시간이 되면 힘이 넘치는 모습으로 모여들곤 했다. 구피는 무럭무럭 잘 자랐는데 유독 한 마리는 잘 자라지 않았다. 먹이를 조금씩 나눠주면서 의도적으로 작은 녀석이 좀 더 먹을 수 있는 쪽으로 주었다. 하지만 다른 큰 구피들이 몰려들면서 얼마 먹지도 못하고 먹이를 뺏기곤 했다. 사실 큰 녀석들은 잘 자라지 못하는 한 마리 때문에 더 많은 먹이를 먹곤 했다.


어항 속에서 일어나는 이 불평등한 듯한 일을 해결해 보려고 매일 안간힘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돌보는 이 작은 생명을 위해 이렇듯 마음이 쓰이는데 이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은 얼마나 힘드실까?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연민과 사랑으로 매일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고 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권력과 힘을 가진 자들이 가로채 가버리고 나누지 않는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그나마 구피들은 먹을 수 있는 양만 먹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한 것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것을 쟁여두고 쌓아두려 하는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다는 세상은 분명 이런 모습은 아니지 않았을까? 내가 키우는 어떤 구피도 싫거나 밉지 않지만 네 마리 모두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내 마음처럼, 이 세상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여 모두가 행복하기를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간절히 원하시지 않을까?라는 상념에 빠져 본다.


엄청 더운 날이었다. 직장인의 토요일은 쉬는 날이 아니라 일주일간 밀렸던 일과 일주일을 준비하는 일로 바쁜 날이다. 땀이 나고 더웠지만, 기후 위기의 지구를 생각해 선풍기만 켜놓고 밑반찬을 만들고 빨래 세탁을 하였다. 실로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일하니 힘이 솟아나는 것처럼 신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토요일 오후가 거의 저물고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해 놓은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주말이 다 가버렸다. 베란다로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내게 실로암은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저 하늘을 보면서 느끼는 고향의 그리움 같은 이 마음이 나를 치유해 주니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실로암이 있었구나! 남강 강변 길, 푸르른 나무와 숲,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 서로 주고받았던 따뜻한 말, 힘내라는 말, 그 말 한마디가 때로는 실로암이 되어 주었다. 지치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과 육신이 숨만 헐떡이며 웅크리고 있다가 어느새 치유되어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 모든 생명의 치유를 위해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실로암을 많이도 준비해 주셨으니 자주 실로암으로 가서 치유를 받고 또 힘내서 살아야겠다. 코로나로 힘들지만 우리 곁에 마련된 실로암을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서로에게 실로암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 모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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