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1.12.02 13:17

옳은 것을 강요하는 바리사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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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태범 요셉 수필가

오랜만에 아는 선배와 전화 통화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성당에서 만난 사이로 대학에서도 가톨릭학생회에서 같이 활동을 했었다. 그 후로 그 선배는 경찰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며 성당에 나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통화를 하다 보니 작년 초부터 혼자 성당에 나와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순간 반가운 마음보다 혼인장애가 먼저 떠올랐다.


“형님 관면혼인 했습니꺼?”
“엉? 그게 뭔데?”


‘천주교 신자는 신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데 비신자와 결혼할 경우 혼인장애를 해소하기 위한 관면을 받아야 한다.’라는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본인은 그냥 힘들 때 성당을 찾으니 편안해져서 혼자라도 계속 미사를 드리고 있다고 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거라 보기는 힘든 상황에서 신자도 아닌 배우자까지 성당에 가자고 부담을 줄 생각은 없으니 정식 절차는 나중에 신앙이 좀 생기면 하겠단다.


순간 예전 성당 사무장 시절처럼 ‘그러면 안 되고 관면혼인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시라’고 설득하려다가 그만뒀다. 학창시절 다니던 성당을 떠나 있다가 20몇 년 만에 힘들게 다시 찾아서 마음에 평화를 얻고 있는 이에게 부담을 주는 게 과연 옳은가 회의감이 들었다.


물론 나는 성당에서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찾는 신앙생활을 참된 신앙생활이라 생각지 않는 쪽이다. 진정 하느님을 찾아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공동체에 속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성당에 오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아서 조용히 혼자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교회를 떠나 자기 삶의 자리에서 살아오다 지쳐서 그렇게 혼자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며 평화를 찾았다는 사람에게 굳이 ‘당신은 혼인장애 상태이니 영성체를 하면 모령성체라는 죄를 짓게 되고, 고해성사를 할 수도 없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며 성당에서 평화를 찾겠다는 걸 막아서는 것이 맞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옳은 신앙생활을 운운하며 율법학자나 바리사이처럼 굴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생각하는 신앙생활만 옳다고 우기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옳은 것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부모가 자녀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내가 해보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되더라’라는 수준의 조언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이렇게 해야 해’라고 강요하는 순간 옳은 것은 더 이상 옳은 것이 아닌 게 될 수도 있겠다.


옳은 것을 옳은 방식으로 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으면 좋겠다.

 

211205 3면 영혼의뜨락 백그라운드(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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