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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황순원은 단편소설 ‘소나기’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움직이는 성』은 그의 장편소설로서 사상적으로 원숙기에 접어들었을 때 쓴 문제작이다. 


새로운 종교가 들어올 때는 원래 있던 신앙과 갈등이 생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모습으로든 섞이거나 하면서 토착화되어 간다. 이 작품은 근대에 유입된 기독교 사상이 우리나라에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민간 신앙의 주술성과 어떻게 통합되는지 깊이 있게 파헤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움직이는 성’은 한반도에 정착해 온 우리 민족이 근원적으로 유랑민 근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 이를 표현한 것이다. 성이란 원래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고 그 안에서 정신적 문화가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유랑민들에게는 고유의 성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몸에 밴 유랑민 근성이 그 성의 구실을 대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움직이는 성’에 기독교는 어떤 모습으로 유입되는 것일까. 소설의 유장한 내용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는데 대신 세 명의 등장인물의 모습을 보도록 하자. 이들의 운명이 곧 우리나라의 민간 신앙과 기독교 신앙이 통합되어 가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먼저 민속연구가인 ‘민구’이다. 그는 한국 전래의 샤머니즘을 연구하면서도 학문보다는 현실적 세계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는 교회에도 나가고 무속 신앙에도 빠져들며 신의 세계와 인간의 삶을 대비적으로 파악한다. 그렇게 그는 현실의 요구대로 사상을 변화시키는 유랑민의 모습을 보여 준다.


다음은 ‘성호’이다. 그는 전도사를 거쳐 목사가 되었다가 교회에서 추방되는 인물로서 스승의 부인을 사랑한 기억을 원죄처럼 지닌 채 살고 있다. 교회에서 추방된 후에도 그는 기독교 전도 사업에 몰두한다. 특히 그는 한국 교회 속에 깊이 침투해 있는 샤머니즘의 벽을 깨달은 뒤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기독교의 토착화 문제를 생각하는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준태’이다. 그는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인물로서 어리석은 샤머니즘에 공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독교가 지닌 광신주의에도 공감하지 못한다. 이런 비판의식을 지닌 그는 결국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유랑민처럼 살아가다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기독교는 이렇게 우리 사회에 토착화되는 데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결국은 갈등이 아니라 화해이다. 이 시대의 일반인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그 가치는 무속과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봄, 가을 날 잡아 굿하구, 음력 정초와 칠월 칠석엔 빼놓지 않구 치성을 드리구, 크흠, 그뿐인가요, 무슨 일이 있을 적마다 살풀이를 한다, 푸닥거리를 한다, 그야말로 무당집 문지방이 닳두룩 드나들었죠, 크흠. 굿을 한 번 하자면 줄잡아두 지금 돈으루 몇 만 원 풀어야 하구, 치성 한 번 드리는 데두, 사오천 원 들여야 했답니다. 크흠, 그게 예수를 믿으면서부터는 술 담배까지 끊게 됐으니 더 절약될 밖에요, 크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1970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던 샤머니즘 대 기독교 사이의 이율배반 속에서 앞으로 펼쳐나가야 할 삶의 자세 등을 보여 주고자 하였다. 그래서 ‘움직이는 성’은 고집스레 견고하기만 한 성이 아니라 오히려 관용과 화해의 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따지고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여전히 신앙은 ‘구복적’ 모습이 많고 이는 저 뿌리 깊은 무속적 전통 속에 닿아 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신앙의 유랑민’으로서 우리 속에 내재된 이 ‘움직이는 성’을 따뜻한 눈으로 응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온 세계는 저마다 다양한 색깔로 성탄의 기쁨을 맞는 것이 아닐까.

 

211219 7면 백그라운드(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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