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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못은 뾰족하고 날카롭다. 그렇듯이 이승우의 소설 『못』은 고통받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주인공 ‘나’는 다니던 잡지사가 강제 폐간되어 실직한 상태이다. 걸핏하면 기도원에 가는 아내가 어느 날 예수 고난주일이라고 집을 떠나자 그도 바다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월미도에 간다.


그곳에서 그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밧줄에 묶인 허약한 남자를 ‘우락부락’한 남자가 끌고 가는 것이다. 그 허약한 남자 즉 ‘흐물흐물’하는 남자는 발작을 하고 그가 끌려가듯 사라진 길에는 한 무리의 군인들이 군가를 부르며 지나간다. 이 연극 같은 장면을 보면서 그는 두 그림이 무언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숙박지인 여관에서 우연히 이 남자의 사연을 알게 된다. 그는 여관 주인인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다. 그런 그가 대학가 시위에 연루되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이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이미 혼자 쿵쾅거리며 군가를 부르고 살려달라고 발악하는 병자가 되어 있었다.


여관방에서 매춘부가 울면서 들려준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어디선가 못 박는 소리, 그리고 옆 교회에서 부르는 고통스러운 찬송가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 소리에 끌려 교회를 찾아간다. 


무엇이든 경직되고 굳어지면 폭력이 됩니다. 아무리 부드러운 것도 오래 두면 딱딱해집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경직된 율법주의는 곧 굳어진 종교의 뿔과 같은 것이었고, 그 굳어진 종교의 눈에 예수의 말랑말랑한 사랑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부드러운 것은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딱딱한 것, 굳은 것이 사람을 해칩니다.


‘딱딱한 것과 싸우기 위해 딱딱해지지 말자’는 그 교회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정말로 편안한 잠을 자게 된다. 같이 예배를 보던 신자들이 다 돌아갔을 무렵에야 잠에서 깬 그는 교회 옆 여관 앞에 모여 술렁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병자로 돌아온 그 청년이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것이다. 내가 밤에 들었던 못 박는 소리는 교회가 아니라 여관집 위층에서 난 소리였던 것이다. 청년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의 소리와 예수가 못 박히는 수난의 고통을 노래하는 찬송가를 ‘나’는 동시에 들었던 것이다. 


오늘날 못의 시대를 사는 종교는, 현실의 위험을 피해 대피해 온 방주가 아니라, 그 현실의 날에 깔려 쓰러진 여러 예수들이 부활을 기다리며 누워 있는 무덤 속이라고 새롭게 인식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활만이 못의 뾰족함을 둔화시킬 겁니다.

 

생각과 말이 점점 뾰족해지는 못의 시대, 이 시대를 헤쳐나가야 할 신앙의 모습은 결국 똑같이 뾰족하고 날카로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못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사랑의 부드러움이다. 청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예수가 함께하였듯이 절대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부드러움으로 서로의 고통을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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