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신앙의 숲

posted Aug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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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변혜연 율리아 시인

220807 영혼의뜨락 상단 이미지(홈피용).jpg

 

숲길 걷기를 즐긴다. 체중을 고스란히 받아주는 푹신거리는 숲길에선 언제나 그렇듯이 기분이 좋아진다. 비 내린 뒷날이나 바람이 부는 날엔 일부러 시간을 내어보기도 한다. 자연이 빗는 아름다움과 섬세함 앞에서 산비둘기 소리를 따라 하는 어린애가 되기도 한다.


이른 새벽, 담양 대나무숲으로 갔다. 대나무숲에서 청량한 아침을 만나고 싶었다. 사각거리는 댓잎의 인사를 받으며 걷다 보니 빽빽한 대나무숲 가운데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아침의 대숲은 온몸으로 햇살 따듯한 기운을 받고 있다. 댓잎에서 떨어진 아침이슬을 먹고 자라는 야생 죽로차가 대나무 아래서 자라고 있다. 대숲은 바람에 갓 우린 차 한 잔을 나에게 내어준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에 대숲의 푸른 손길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바람과 댓잎 소리에 나를 맡기고 싶어져 휴대전화도 잠시 꺼보기로 했다. 여러 개의 나무 계단 위로 울울창창한 대나무숲이 제각각 이름표를 달고 있다. 쭉쭉 뻗은 대나무와 나란히 걷는 길에서 이름표가 바뀔 때마다 나도 주머니 속 이름표를 하나씩 꺼내 바꿔 달았다. 마음이 답답할 때 다녀갔다는 대밭길을 지나 3번째 길 이름표는 ‘사랑이 변치 않는 길’이다. 이곳을 다녀간 누군가는 변치 않을(?) 사랑을 약속이라도 하듯 대나무에 새겨 놓았다. 그 사랑이 지금도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숲은 촘촘한 간격으로 군락을 이뤄 자리하고 있다. 곧게 뻗은 대나무를 따라 시선을 올려 보았다. 대 끝에 걸려 있는 손바닥만 한 하늘에 편지를 써 보고 싶어졌다. “맨살끼리 부대끼며 살아가는 대숲에서 나는 평화를 만났다”고 출구를 알려 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면 세상과 만나게 된다.


대숲 앞에서 “저 대나무들의 간격을 넓힌다면 대나무숲이 지금처럼 서 있을 수 있을까?” 질문을 해 본다. 소나무숲, 전나무숲을 떠올려 보면 대숲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숲다운 숲이 되기 위해 각자의 간격이 얼마만큼 중요한지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세상은 2년간의 코로나를 겪었고 아직도 일상의 단계적 회복이라는 ‘위드 코로나’를 살고 있다. 코로나를 겪는 동안 우리는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경험했다. 화상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온라인을 통한 수업이 이뤄지는 등 새로운 방식을 살아내는 시기였다. 우리의 다양한 표정과 몸짓을 잊어버리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서로의 표정을 읽고 기쁨도 어려움도 나눌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하자. 촘촘한 발걸음들이 모여드는 신앙의 푸른 대밭을 만들기로 하자. 몇 그루 대나무만으로는 서 있기조차 힘들지만 한 그루 옆으로 한 그루, 두 그루가 같이 자랄 때 달달 볶아대는 더위쯤은 시원하게 이겨낼 것이다. 죽순이 쑥쑥 자라듯이 코로나를 살아낸 우리의 신앙도 우후죽순처럼 성장할 것이다.


대나무꽃은 평생에 단 한 번 핀다고 한다. 짧게는 60년, 길게는 120년에 한 번 필 정도로 귀해 만개했다는 꽃소식에 사람들이 모이듯 지금 이 시기가 신앙의 꽃을 피우기 위해 서로의 간격을 좀 더 가까이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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