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06.22 16:29

박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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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서현 아녜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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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가 내 방문을 두드린 것은 꽃샘추위가 한창 기승을 떨치는 2월 어느 날이었다. 저녁에 TV를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렸다. 서너 번의 소리에 무심코 창문 쪽으로 돌아보니 그림자가 비쳤다. “오 제비, 너 왔구나!” 반가움에 나는 얼른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제비와 느닷없이 동거가 시작되었다. 하룻밤만 묵고 날아갈 줄 알았는데 아예 주저앉아 주인행세까지 했다. 하지만 제비의 행동거지를 보니 차마 내보낼 수가 없었다. 예컨대, ‘응가’조차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내가 누운 머리 위쪽 액자에서 잠을 자곤 했는데, 그가 응가를 해도 얼굴에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친구들은 “그래도 모르니까 걔한테 속옷을 입혀줘라” 하면 나는 “우리 제비, 얼마나 조용하고 예의가 바른 줄 모르는군.”하고 말했다. 그가 짝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짝을 데리고 나타났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짝꿍한테 속살거렸다. “잘 봐! 이분은 성모님, 이 꽃은 호접란이야. 이 책상에 가끔 내가 앉아 ‘지지위지지요, 부지위부지시지야라’ 큰소리로 논어를 읽기도 하지.” 그들의 밀월을 훔쳐보는 내게 닭살이 돋아도 개의치 않았다. 얼마 후, 제비들은 내 방에서 집짓기를 시작했다. 어디에다 지을지 고민하더니 생각한 것이 형광등이었다. 나는 그들의 움직임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둥지가 완성되자 제비는 7개의 알을 낳았다. 태어난 새끼들은 날이 갈수록 우렁차게 울어댔다.


이때 태어난 새끼들은 성큼 다가온 더위만큼 생존에 안간힘을 쏟는다. 제비 부부가 물고 온 먹이에 입을 더 크게, 더 재촉하여 받아먹는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여 더 넓은 곳으로 날아가지만, 반면 잘 받아먹지 못한 새끼는 날갯짓조차 힘겹다. 그런 만큼 어미 제비는 숨 쉴 틈 없이 바쁘다. 높은 하늘에서 새끼들 비행연습 시키는 중에도, 집에 남은 한 마리 새끼가 마음에 쓰여 수시로 집안을 드나든다. 그러나 새끼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 결국, 어미도 드나드는 횟수가 줄어든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나는 긴급하게 조류보호센터로 전화를 했다. 집을 방문한 관계자가 말했다. “얘네들은 식성이 까다롭습니다. 죽은 건 안 먹고 날아다니는 것만 먹는답니다. 일단 제가 데려가 보겠습니다만, 이 상태로 봐선 희망이 안 보입니다.” 나는 살아서 돌아오길 밤낮으로 기도했다. 열흘이 지났다. 죽어가던 새끼는 거짓말처럼 포동포동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더 놀라운 것은 낮에 얼굴조차 보기 힘든 어미가 알아채고 집으로 온 것이다. 그 재회는 실로 눈물겨웠다.


제비와 동고동락한 지 8년을 보내고 떠나보냈다. 그 이듬해 봄, 날아온 제비에게 “이사를 하니 이제 이곳에 살지 못한단다.”라고 말했다. 제비는 알아들었다는 듯 안팎으로 집을 짓지 않았다. 제비가 집으로 오는 해마다 친구와 지인들이 물었다. “박씨 물고 왔니?”라고. 돌이켜 보니 ‘그래, 어쩌면 이 글을 쓰는 것도, 동화 한 권을 쓰게 된 것도 박씨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씨를 심었더니 열매가 열리고, 그리고 박을 탄다. 쿵! 박 속에서 금은보화가 막 쏟아지네. 에헤라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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