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신앙

나의 문학과 신앙의 걸음

posted Jun 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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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연희 크리스티나 시인

나는 의료인으로 일찍이 죽음을 통하여 내 가슴에 하느님을 영접하였다. 직업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죽음은 생명을 창조하신 신의 영역임을 깨달은 스무 살 중반이었다. 간호직은 천직이었고 1990년대에 대한간호협회신문 수기, 수필, 시로 문학에 등단이 되었다. 바쁜 직장 탓으로 시작詩作은 어설프게 유지되고 적극적이지도 않아 방관적이기도 했다. 잘 삭히거나 다듬지도 못하나 지금까지도 시의 밭에 머물고 있다. 시를 쓰는 순간마다 나의 영혼은 하늘가에 맴돈다. 뼈도 살도 없는 바람 찬 영혼에 팍 불이 켜지고 이면의 그늘을 걷는 사유思惟는 오롯한 자유의 공간이다.

삶은 순간의 연속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치료 약은 없다” 소로우의 말에 보람 있게 적극적으로 잘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세우고 머물며 노력하던 중 2019년 봄. 네 번째 시집 『남은 날을 하늘에 걸고』를 발간했다. 제목만큼이나 순간마다 진지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사색의 몸통보다는 행동의 날개가 되고 싶었다. 더 진한 주님의 사랑 맛을 내고 싶었다. 우주를 향한 노래는 덧없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하여 시간의 깃을 세운 시는 미련 없이 저 허공에 뿌리리라 다짐하였건만 미련이 소나기같이 몰려와 십 년 만에 네 번째를 주님께 올렸다. 글쓰기는 언어로 그림을 그리거나 집을 건축하는 일에 비유한다. 그것은 선을 지향하고 영혼을 맑게 가꾸는 일이라 구원의 길을 향하여 걷기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모든 건 주님께서 허락하심이 전제하니 매사 감사함에 숙연하다. 인연을 덧칠하는 연보랏빛 마음으로 그 발걸음을 잇는 사랑의 연가로 조용히 노래를 청했다. 늘 마음 가는 곳이 있다.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먼저 듣는 그대의 음성은 먼 나라로부터 날아오는 구원의 손길, 작은 정성을 보태 나누는 콩알 반쪽. 가슴에 흐르는 끝자리의 아픔들을 안고 오늘도 하루 여행을 페달 굴리며 간다. 숨을 밟으며 떠난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꽃의 메아리도 찬란하다. 아, 살아있음이여, 하늘과 눈 맞춤이 자유로운 우듬지에 마침내 이 순간도 가슴이 떨린다면 내 삶은 성공이다. 내 영혼의 안식처에 날개를 펼친다.


남은 날을 하늘에 걸고✽1
팽이돌이의 세파는 재우고 또 재워야하리//멍에의 심장이 전하는 말/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진리의 탑을 정수리에 곧추세우고/오직 이 하루를 위한 사랑의 심지로/그대에게 반짝이는 기쁨이 되고파//십이만 킬로미터 혈관을 짊어지고/숨 쉬는 기적과 마술 사이 오렌지 궁전으로/절실한 그대의 위로는 톺아 읽기//비우고 낮춘 천 번의 절망에도/축복의 희망을 한 아름 안겨주기/지금 이 순간을 그대로 드리기


남은 날을 하늘에 걸고✽2
가슴안 소금물은 시들지 않네//오늘도 반짝 하늘에 닿나보다// 사는 게 하루살이/다람쥐 쳇바퀴 돌기라 하여도/사랑 빚어 묵묵히 가야 할 길//애증의 둘러쓴 언덕의 시간/스쳐 간 흔적에 가벼운 손 인사/겸손한 님의 음성을 밝히리//내일이란 운명은 점점 짧아져/온정의 물 한 잔 성심껏 바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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