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신앙

더 가까이 다가가는 작업, 나의 수필

posted Jul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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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홍연수 마리아 수필가

어릴 때 지렁이를 보다 호기심에 살짝 손가락을 대봤다. 보드랍고 따뜻한 느낌이 손끝에 닿았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여운이 깊게 남았다. 성인이 되어 바삐 살던 어느 날 지친 일상을 떠나 며칠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침묵 피정에 들어갔다. 고요 속에 머물며 많은 것을 돌아보니 영혼도 맑아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오랜만에 운동장을 걸었다. 그때 눈앞에 커다란 지렁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손가락을 살짝 대보니 단단한 메마름이 훅 밀려왔다. 이때 묵상이 내 일상을 많이 바꿨다. 나는 봐야 믿고 겪어야 아는 어리석음에 신앙이 늘 부족했다. 그래도 참된 행복과 진리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은 버릴 수 없었다. 채워지지 않던 갈증을 쫓아 반복되던 불안이 나의 묵상이며 기도가 되었다. 그렇게 더딘 걸음으로 살다 때론 가쁜 숨도 몰아쉬었다.


분만실에서 조산사로 근무할 때 나는 생명의 신비를 깊이 체험했다. 한 탄생을 보며 놀라운 은총으로 내 삶은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지역사회봉사를 통해 오류에 흔들리던 청소년들을 만났다. 그 영혼들이 진리 앞에서 반짝이던 눈빛은 잊을 수 없다. 혼란이 상처와 아픔이 되어 빛을 잃어간다. 애타는 성심을 알기에 난 기도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나는 수필 <참 소중하셔요>에서 존재의 소중함을 썼다. “그래서 나도 입술을 가만히 움직여 소리 내서 조심스럽고 나지막하게 내게 들려주었다. ‘넌 소중하단다.’ ‘넌~ 참 소중하단다.’ ‘넌 참 소중해.’ 꿈결처럼 따스한 음성으로 내게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그때. 내 존재를 알고 보내주신 분이 문뜩 떠올랐다.”


또 수필 <두려움>에서는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길을 썼다. “마음 편히 말을 하고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건 사소하지만 즐거운 일상이다. 그러나 소통이 어려운 이들도 많다. 나도 대화의 일상을 찾기까진 참 오래 걸렸다. 낯선 환경에 긴장되어 신경은 곤두섰다. 먼저 말을 하려니 목이 잠겨 입술을 자꾸 깨물었다.”


이런 글들을 쓰면서 조금씩 나를 깨고 더 가까이 사람에게로 주님에게로 다가가는 작업을 할 기회를 얻었다. 3인3색신앙수필집은 교구 가톨릭문인회에서 5년간 기획하여 발간한 책이다. 나는 마지막 해인 작년에 『더 가까이 오라는』 신앙수필집에 참여하여 열세 편의 수필을 싣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일을 준비만 하고 무력해질 때 성모님께 큰 힘을 얻었다. 놀랍게도 자립 장애인 모임을 통해 지금은 또 다른 희망이 생겼다. 세상에 힘들게 태어난 선천적 장애인들의 맑고 순수한 모습은 하느님의 또 다른 시선인 것 같다. 생명은 저마다 다른 의미로 함께 살며 존재한다. 이 일을 통해서도 주님을 찬미하는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참된 신앙 속에 살길 바라신 뜻을 조금씩 알게 됐다. 이젠 모든 일을 성모님께 매 순간 봉헌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 다가서는 기쁨이 더 크다는 신념도 드디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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