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신앙

시심이 신심으로 승화하기까지

posted Aug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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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도경회 스텔라 시인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부엉이가 내 이름을 불렀네/ 말기 암을 진단받고/ 매운 콧잔등 훌쩍이며/ 날갯죽지 흠뻑 젖은 구름다리 건너 들어선 방/ 이런 사연 저런 사연 삭지 못하는 지난날/ 일제히 울었고/ 무엇엔가 엎눌리며 떠밀리며 살아온 내력들/ 저마다 따로 울었네/ 뼈를 녹이고 살을 에이듯/ 가을 겨울이 엎질러 놓은 울음 한 소쿠리/ 캄캄하게 수습하던 저 흰 너겁들/ 허리 긴 서름에 젖어 서서히 탈색되면서/ 차가운 바닥에 떨어진 목련 꽃잎처럼/ 뒹굴고 있네” 

-시 <우는 방>-


지난해 가을 발간한 나의 시집 『데카브리스트의 편지』에 실린 시입니다. 이 책의 해설을 쓴 허형만 시인은 “도경회 시인의 이번 시집의 시어 중에 ‘울음’이 많다. 간호사로서 아픔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환자들을 돌보며 그들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 그리고 신앙심이 어우러진 점도 있겠지만 시인의 타고난 자비로운 심성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습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 바탕이 여느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여깁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나 들리는 이야기들을 측은지심으로 듣고 보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 연민스러울 때를 나는 좋아합니다. 어쩌면 시를 쓴다는 것은, 너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적는 것이며 그대에게 나를 바치는 기원일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을 쓸 때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쓸 때는 라파엘로가 그린 성화 ‘시스티나의 마돈나’ 아기 예수를 안고 구름 위에 서서 슬프고도 여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성모의 초상 앞에서, 기도가 하도 간절해 그가 기도할 때 아내는 그 방에서 나와야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죽인 사건을 그린 악마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작은 우물에 갇혀 고뇌와 갈등과 고통을 겪는 인간들에게 성모님의 은총을 기원했을 것입니다. 불현듯 내가 가톨릭문인회에 처음 들어갔을 때 故 서인숙 마르따 시인께서 “나는 시를 쓰기 전에 항상 기도했다”고 하시던 말이 생각납니다.


“이 수술 끝나면/ 월남전 파병용사인 나는/ 목소리를 잃는다// 수술실 앞에서/ 그늘을 한 자락 매달고 있는/ 안사람 손을 잡아본다/ 잎새들 다 떨어져 헐빈한/ 옹이 많은 나무// 자네를 만난 것이/ 내 생애 제일 큰 복이었네/ 온 정신을 모아/ 툼벙툼벙/ 마지막 말을 던진다// 소리가 와서 머무는/ 내 그리운 뜨락에/ 휘파람새로 와서 울어/ 홀로 핀 소리 꽃 한 송이/ 막막하고 두려운 순례를 가고 있다”

-시 <휘파람새>-


소중한 삶의 노래며, 맑은 영혼의 집인 나의 시가 가톨리시즘의 신심으로 승화하여 가야금 열두 줄에 소리 일 듯이 기도가 되고 고해가 되고 고해성사가 되기를 간구해 봅니다.


✽마태 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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