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posted May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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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권 시몬 수필가/ 가톨릭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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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자 교리교육을 마치고 세례를 받기 위한 1대1 찰고 때였다. 신부님께서 “고성소와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해서 설명해 보라?” 하셨다.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질문에 주저주저하다 “둘 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단어인데 뜻은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교리를 순 껍데기만 배웠구나” 하시며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던 그 신부님의 기억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예전에(1997년까지) 사용하던 사도신경에는 “저승에 가시어” 대신에 “고성소에 내리시어”라고 되어 있었다. 고성소는 두 종류로 나뉘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구약 시대의 의인들이 기다리던 곳과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어린이들이 머무르는 곳이라 가르쳤다. 그러나 그 후 고성소에 관한 내용은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가 아니라, 일부 신학자들의 견해이기에 한국교회는 “고성소에 내리시고”라는 표현이 잘못된 번역이라고 결론을 내리며 “저승에 가시어”로 개정한 것이라 한다. 인간의 구원을 “세례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보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촉구한 것으로 풀이한다는 것이다. 


종교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권유로 그렇게 세례를 받았다. 영세한 후에 부모님에게 숨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말씀을 드렸더니 그때 병중에 계셨던 아버지는 작은 소리로 “집안에 망조가 들었구나. 세상에 우리 집에 예수쟁이가 생기다니”라고 혼잣말을 하시는 걸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 교회 종소리가 들릴 적에 나를 깨우시며 “아들아! 너 오라고 종 치는 모양인데 성당에 가지 않느냐”라고 하시기에 “저건 우리 성당 종소리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고 다시 잠이 든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에 아버지는 세상을 뜨셨는데 워낙 내가 초보 신자였기에 어떻게 비상세례라도 받을 수 있는 조처를 할 수 없었음이 몹시 안타까웠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아버지가 그리울 때 문득 그때 성당에 가라고 날 깨우셨던 기억이 나면서 달랑 그 행위 하나만으로도 하느님께서는 좋게 봐주셨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5월은 주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기억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와 은총의 삶을 살아갈 것을 권고하는 성모 성월이다. 또한 스승의 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다. 신록의 계절 5월은 이렇게 예사롭지 않은 아주 크고 의미 있는 축복의 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난날 하느님을 아버지께 모셔다드리지 못하였지만 당신 스스로가 교회의 종소리에 반응하신 것을 보면 하느님을 인지하신 것도 같으니 사랑이신 주님께서 십자가상의 우도가 말 한마디로 낙원에 든 것처럼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리라 믿고 싶다. 내 나이 아직 어린 날에 떠나시어 제대로 효도 한 번 못해 드린 아버지를 위하여 어버이날이 있는 이 오월에 성모님께 빌어주심을 간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