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 단어가 자꾸만 떠올라 사전을 들춰봅니다. ‘예상보다 빠르게’, ‘이미 오래전에’를 뜻하네요. 제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11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버린 10개월이 저에게 ‘벌써’를 떠올리게 한 듯해요. 11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보기 좋은 빛깔로 물들었던 나뭇잎이 떨어지고, 가지만 남은 나무와 흙빛을 닮아가는 낙엽들이 11월의 시간을 알려줍니다. 저에게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저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서 봄이면 연둣빛 설렘과 희망을, 여름이면 성장 의 환희를 일깨워 주었지요. 지금은 찬란했던 그 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네요. 잎을 모두 떨어뜨린 채 가지만 남은 나무는 쓸쓸해 보입니다. 건들거리는 바람에 수런대는 나뭇가지가 추위에 오돌오돌 떨고 있는 건 아닌지, 나뭇잎 옷을 벗고 맨살을 드러낸 채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목도리라도 둘러주고 싶은 제 마음을 나무 가 받아줄까요. 아마도 나무는 저에게 인간의 눈을 거두고 자연의 눈을 떠 보라고 말하겠지요. 나무 스스로 잎을 훌 훌 떨어뜨리고 벌거벗기로 한 선택이 순리일 테니까요. 볕이 뜨겁다고, 목이 마른다고, 흙이 성기다고 다른 거처를 찾아 떠나지 않는 나무는 스스로 잎을 떨어뜨려 그 양분으로 살아갑니다. 뿌리를 따뜻하게 데우고, 가지를 키우고, 꽃 을 피워내도록 밑거름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자락자족의 삶, 바로 이것 아닐까요. 이제야 제 눈에 앙상한 나무의 쓸쓸함보다는 의젓함이, 고독함 너머로 당당한 자태가 보입니다. 누구도 가늠할 수 없이 깊은 나무의 가슴속에는 시린 추위를 이겨내고 아기 주먹 같은 새싹을 피워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이 옹골져 있으리란 것도.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부릅니다. 아라파호 족이 초록빛으로 반짝거리던 생명의 약동과 누렇게 익어가던 대지의 풍요가 사라진 광활한 세상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망설임 없이 잎사귀를 내려놓고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켜 선 나무, 꽃대가 말라가며 제 발아래 꼭꼭 숨겨둔 작은 씨앗들, 자기가 아는 가장 안전한 곳에서 새끼를 품는 온갖 생명들. 대지 아래위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찬바람 휘몰아 치는 겨울을 견뎌낼 준비를 하는 모든 것들을 본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가을은 겨울을 부르고, 겨울은 반드시 봄을 데려온다는 것을. 그 봄에는 반드시 용감한 새싹이 고개를 내민다는 것을. 그렇기에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기억하고 또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11월. 저에게 찾아온 ‘벌써?’에 난만히 피는 봄꽃을 ‘벌써’ 기다리는 저의 마음도 살포시 얹어봅니다. 부활하는 새봄이 반드시 올 것을 믿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