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연기 뿜으며 양화진에 들어서는 군함
병인년 조선은 풍전등화(風前燈火)다
봄 버들꽃으로 북적대던 나루
믿음은 거룩하게 꽃이 피고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한 형제인 삶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것
위정자의 등불 바람에 타올라
죄 없는믿음에 칼날은 거세게 춤추고
믿음으로 버티던 흰옷 입은 사람들
머리는 강물에 셀 수 없이 떨어지고
붉은 피는 붉은 노을로 떠올라
무명 순교자 홀연히 떠난 자리
무릎 꿇고 두 손 모으며 기도하오니
잠두봉 비추는 아침햇살이여
한강 붉게 물들이는 저녁까지
부활의 꽃으로 활짝 피어나게 하소서
참혹한 순교터가 된 버들꽃나루여
서울 한 복판에 우뚝 선 절두산이여
당신을 기리는 탑이 되게 하소서
|절두산 성지|
절두산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일대의 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머리를 높이 든 형상이라 하여 가을두, 누에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잠두봉이라 부르던 곳이다. 바로 아래 양화진 나루터에는 한강을 통해서 각 지방에서 조세곡 수송선과 어물, 채소 등을 실은 배가 드나들었다. 양화진 주변은 잠두봉과 어울려 이름난 명승으로 많은 풍류객과 문인들이 뱃놀이를 즐기면서 시를 지었던 곳이기도 하다. 1866년 2월 프랑스군함이 천주교 탄압을 문제 삼아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과 서강까지 진입하였다. 이에 격분한 대원군은 수 많은 천주교인들을 잠두봉에서 목을 베어 참수케 한다. 그 뒤로 머리 를 잘랐다 하여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
서울교구는 1956년 절두산 부지를 매입하였고, 1967년 병인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념성당과 박물관을 준공하였다. 1997년 우리 역사의 중요한 유적지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사적 제399호(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로 지정되었다. 기념성당 제대 뒤쪽 지하에 위치한 성인유해실에는 현재 27위(기해박해 순교자 9위, 병오박해 순교자 1위, 병인박해 순교자 17위)의 순교성인과 무명 순교자 1위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