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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으로 잘 알려진 전영택의 작품 중 <크리스마스 전야의 풍경>이라는 단편이 있다. 

작가가 1960년도에 쓴 작품으로 그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인 백인수 대위는 군대에서 군목 생활을 하다가 막 제대한 인물이다. 

그는 성품이 곧고 솔직한 대신 사교성이 부족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특히 그는 속물적인 사람이나 사이비 신앙인을 잘 참아내지 못한다. 

 

제대한 그즈음에 마침 그는 부유한 누이의 집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그는 환멸감만 느끼고 파티장을 빠져나온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갖지 않으면서 저희들끼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성탄 전야를 즐기는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누이의 집에서 나온 그는 근처의 방공호를 찾아간다. 

그곳에는 가난한 할아버지와 꼬마가 살고 있었다. 

불현듯 그는 이 불쌍한 꼬마에게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어 아이를 데리고 파티장으로 다시 간다. 

그가 산타 분장을 하고서 주님의 선물이라며 흰 보자기 속에서 꼬마를 내어놓자 

체면상 누이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돈과 먹을 것을 싸주는 선심을 베푼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나고 손님들도 다 돌아간 밤, 이 집의 어린 딸 애경이는 밖에서 자꾸 누가 자기를 부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무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새벽, 그들은 대문 밖 담모퉁이에 눈에 덮힌 채 얼어죽은 작은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전날 밤 주님의 선물로 찾아왔던 그 꼬마였다. 

무관심 속에 돌려보낸 아이가 그 집을 떠나지 못한 채 추위 속에서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이 선물은 내가 가져왔다기보다는 주님 예수께서 보내신 것이다. 아니 주님이 친히 오신 것이다. 지극히 작은 아이 하나를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한 것이요, 지극히 작은 아이를 대접하는 것은 나를 대접한 것이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이것은 크리스마스 파티장에 왔던 주인공 백 대위의 말이다. 

이 목소리는 방공호에서 차가운 성탄을 보내는 불쌍한 아이를 돌아보라고 한다. 

작가가 백 대위의 입을 빌려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따뜻한 저택의 파티장이 아니라 춥고 어두운 담벼락에 머물러 계시지 않았을까.    

 

오늘날에는 196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물질적 풍요가 넘쳐흐른다. 

그러나 여전히 그 풍요로움에서 제외된 이웃이 많다. 

이웃과 함께 성탄의 기쁨을 나누자는 말은 식상한 말일지 모른다. 

그 식상함만큼이나 우리는 스스로 그 ‘의무’를 다했다고 쉽게 믿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극히 작은 아이 하나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나를 돌아보지 않은 것이고, 

지극히 작은 아이 하나를 대접한 것이 나를 대접한 것이다’는 말씀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아이에게 돈과 과자를 들려보냈다고 해서 진정으로 그를 ‘대접’한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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