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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9 16:55

부조리한 현실, 약동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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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맞물림

베라크루스 지방의 엘 타힌 유적 구기장의 돋을새김에 두 사람의 선수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이 부조는 죽음과, 머리를 자르는 의식과 공놀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다른 그림에는 복잡한 머리 장식을 한 두 사람이 가운데를 향하여 마주보고 있다.

두 사람의 앞에 있는 것은 두 마리 뱀의 머리인데, 각각 뱀의 입으로부터 길게 나온 혀가 끝부분에서 서로 얽혀 ‘욜린’(움직임)이라는 글자를 이룬다.

둘의 마주섬은 움직임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뱀은 생명을 상징한다. 즉, 공놀이의 마주치는 힘이 움직임을 만들고, 그것은 생명이 나타나고 시간이 흐르는 데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치되는 두 힘의 조화, 인간이 찾는 균형은 그 내부에 있는 인간 자신의 삶과 죽음의 이중성에서 비롯된다.

이 이중성이 균형을 이루며 맞물려 갈 때 물리적으로 움직임이 생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천체의 움직임도 빛과 어두움, 밤과 낮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 정혜주, 「멕시코시티_ 아스테카 문명을 찾아서」, 64-65쪽 

 

멕시코 아스테카 문명 설화에 의하면, 어둠이 지배하던 때에 두 신들의 영웅적인 죽음으로 태양과 달이 태어났지만 움직임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신들의 심장을 태양신에게 바쳤더니 드디어 우주의 질서가 생기고 ‘움직임’이 있게 되었습니다.

군사적 정복과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아스테카 문명은 이런 설화를 토대로, 태양의 지속적 움직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신공양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공놀이는 희생될 사람을 결정하는 의식입니다.

어차피 승리자와 포로의 싸움이며 이미 누가 죽어야 할지는 정해져 있지만,

이 희생이 신들을 따르는 숭고한 것이고,

또한 별들과 우주의 운행을 위한 명예로운 죽음이라는 것을 장엄한 의식으로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우주적 움직임과 생명의 약동은, 그 반대의 극점에 있는 죽음과의 대치, 죽음과의 균형을 이루는 이중성에서 온다는 이해를 보게 됩니다. 

 

답답한 현실을 뒤집는 희망 <비우니 채워지더라> 

오늘은 갈치, 내일은 고등어. 설날 남긴 냉동실 나물 녹여 비빔밥 해 먹고…

냉동실 발가벗고 나니 은행 갈 일 별로 없고 한 달 생활비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부자 된 기분이다. 

…코로나만 아니면 좀 답답해서 그렇지 비우고 나니 얻는 것도 많음을 깨달았다.

혼자 즐기는 법도 배우고 각자 위생을 챙기면서 희망을 가지면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보리 한 되 사 와서 모아둔 플라스틱 통에 보리싹을 키우니 먹기도 하고 집안이 푸른 잔디밭이 되었다.

힘들다, 어렵다 하지 말고 즐기면서 사는 현명한 방법을 터득해서 우리 함께 위기를 잘 극복하자.

 

대구 집에서 격리생활을 하는 박영자 할머니가 지인들에게 휴대전화로 보낸 글이 기사(뉴스1, 3월8일)로도 소개되며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희망은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고 기대할 수 있는 정신적인 능력으로써,

역경이 있기에 그것을 이겨내고, 절망이 있기에 그것을 극복하며, 약점이 있기에 그것을 승화시켜 나갈 수 있게 하는,

성령을 통해 얻게 되는 덕입니다. 두려움이 있기에 용기를 내듯, 우리 삶의 좋은 것은 그 반대점과의 마주침으로 얻어집니다.

 

극과 극이 만드는, 생명을 약동하게 하는 리듬

아델리 펭귄은 한 달 정도 알을 품으면 부화가 시작되는데, 이때가 남극이 가장 따뜻할 때입니다.

아비는 뱃속에 저장한 크릴을 토해내며 새끼들을 키웁니다.

어미가 돌아오려면 며칠  걸리니 조금씩 토해내며 버텨야 합니다. 이 시기, 부모의 체중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적도, 열대의 바다, 이곳에 낯선 생명체가 보입니다.

북극에 사는 혹등고래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적도에 나타난 이유는 출산과 육아 때문입니다.

북극의 차가운 겨울바다는 지방층이 얇은 새끼에겐 가혹한 환경입니다.

일 년 내내 따뜻한 적도의 바다는 피부가 여린 새끼를 키우는 데 최적의 공간이죠.

하지만, 어미젖을 먹는 새끼와 달리 이곳엔 어미의 먹이가 없습니다.

굶는 수밖에요. 수개월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모유로 새끼를 키우는 어미는 체력을 최대한 아껴야 합니다.  

- 20.03.03. KBS 대기획 “23.5” 1부 봄날의 전투_극과 극 

 

아델리 펭귄 부모가 자신들의 몸을 축내면서, 그리고 혹등고래 어미가 몇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그렇게 하나의 밀알은 또 다른 생명을 키워냅니다.

그러나 그 밀알 또한 죽는 게 아니라 자신의 확장과 성장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새끼가 태어나고 자라듯, 어미 또한 그렇게 어른으로 성장해갑니다. 

 

아직 새끼들은 바람에 취약합니다. 솜털만으로 이겨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산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이 경사면에 쌓인 얼음 알갱이들을 싣고 날아옵니다.

얼음 알갱이가 콜론 위를 뒤덮지만 바람을 등진 채 뭉쳐있는 수밖에 없습니다.

바람이 모든 걸 쓸어낼 기세로 강하게 몰아칩니다. 이곳은, 남극입니다. 

혹독한 기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시련을 이겨낸 새끼들은 한층 성숙해졌고 바다는 더 풍요로워집니다.

알을 깨고 나온 지 두 달, 새끼는 날마다 빛깔을 달리하며 자라납니다.

 

혹독한 시련의 바람, 생명을 시험에 들게 하고, 약한 생명을 꺼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생명을 ‘생명’답게 만드는 것은 그런 혹독한 시련입니다. 

 

45억 년 전, 태양 주위를 돌던 지구가 작은 행성과 충돌해 만들어진 기울기 23.5도,

절묘하게 기울어진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특별한 리듬을 만들어냈습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기울기, 23.5도, 그것은 기적 같은 생명의 리듬이었습니다. 

기울기의 극적인 지배를 받는 곳. 남극과 북극은 번갈아가며 얼고 녹기를 반복합니다.

지구의 생명체가 살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춰 생명들의 삶은 이어집니다. 

23.5(바로 그 기울기), 지구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생명의 숫자입니다. 

 

우리 삶은 절대 평평하고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늘 기울어져 있는 우리들의 삶, 그래서 생기는 삶의 굴곡들, 그러나 그 기울어짐에는 절묘함이 있습니다.

삶의 기울기가 만들어내는 그 굴곡들은 결코 삶의 나락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을 약동하게 만들어주는, ‘생명의 리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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