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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답을 짧은 수필 두 편을 통해서 생각해 본다. 

박완서는 일상의 삶의 모습을 많은 소설로 그려낸 작가이다.

저명한 소설가인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일상의 단상을 다수의 글로 남기기도 하였다.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어느 가을에서 봄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깊은 산골짜기 오두막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곳에서 작가는 겨울이 지나 봄이 되도록 여전히 메마른 잎을 달고 있는 밤나무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안개인지 이슬비인지 습기로 천지가 눅눅한 어느 봄날, 난데없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밤나무들은 순식간에 잎을 떨군다.  

 

이제 잎들의 운명은 나무에 속하지 않고 땅에 속하게 되었다.

작가의 말대로 봄바람에 어이없게도 한순간 떨어져내린 그 잎새들에게 “움트는 새싹은 원수 같았을지도” 모른다.

삶의 끝과 시작이 만나는 순간, 떠나는 자에게 새 생명은 결코 곱지만은 않을 것이다.

남편과 사별하고 다음해 정말 어처구니 없이 아들의 죽음까지 경험한 작가에게도 ‘새 생명’의 모습이 경이롭지만은 않았으리라.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고 싶으면 원수를 위해서 양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섭리 앞에 인간이라고 해서 가랑잎보다 나을 것이 없다. 

떨어진 가랑잎이 거름이 되어 새싹을 키우듯이, 인간도 새 세대의 삶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그리고 그 가장 소중한 양분은 미움이나 시샘이 아니라 ‘사랑’이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 삶을 아름답게 이어가게 만든다.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고 작가는 “하느님, 당신은 옳으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말한다.

 

법정 스님의 「설해목」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깊은 산속, 모진 바람에도 끄떡없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겨울철이면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하얀 눈에 꺾이고 만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온 산에 울리는 나무 꺾이는 메아리에 스님은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자비’의 깊은 의미 때문이다.

그의 스승인 노승에게 어느 해저문 날, 지인의 망나니 아들 하나가 찾아온다.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노승은 저녁을 지어 먹이고,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더운 물을 떠다 주었다.

한바탕 훈계를 예상하던 아이는 노승의 말없는 시중에 주루룩 눈물을 흘린다. 이 일화를 인용하면서 법정 스님 역시 말한다. 

길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게 만든 것도 세찬 바람이 아니라, 따스하게 내리쬐던 햇살이 아니었던가.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도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눈의 부드러움이 억센 소나무 가지를 꺾고, 노승의 자비가 아이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듯 이 세상에 정녕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라 부드러운 손길이다. 그것이 얽힌 실타래를 풀고, 너와 나를 화해하게 만든다.     

짧은 수필 두 편이지만, 우리는 알 것만 같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그 따뜻함이 세상의 추위를 녹이고 조약돌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산마다, 들마다, 그리고 우리가 모여 사는 구석진 곳곳마다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는 봄이다.

맑은 봄향기처럼 세상에 사랑이 가득하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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