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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4 14:12

부활을 믿지 않는 세상에 부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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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활 Risen. 2016

로마인이군요? 그거 호민관 반지인가요?

넋 나간 얼굴로 광야를 건너다 발견한 집에 들어가 음식을 청하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주인공인 호민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로마제국의 보병군 지휘관인 호민관 클라비우스가 그려갑니다. 

그가 하는 일은, 로마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반기를 드는 이들을 제압하고 죽이는 일입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그는 반란의 선봉장인 바라빠를 칼로 찔러 죽입니다. 

빌라도 총독의 명을 따라, 그는 십자가에 죽은 예수의 뒤처리를 합니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에게 시신을 내어주고, 예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무덤에 경비병을 세웁니다.

빈무덤 사건 이후에는 사태의 종결을 위해 예수의 시신을 찾아 나섭니다. 

그는 죽은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 자를 발견합니다.

그것이 그의 삶을 온통 뒤집어 놓았고, 그가 겪은 이 모순이 진짜인지, 산 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갈릴래아로 향하는 제자들의 뒤를 따릅니다.

그리고 그분과 재회합니다.

 

무엇을 찾느냐, 클라비우스? 확신? 평화?

그는 이제 확신이 없습니다. 무엇이 평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이 없는 일상? A day without death?

비로소, 그의 눈이 번쩍 떠집니다. 그가 소망하던 그 일상입니다.

 

매일매일이 죽음의 나날이었습니다.

호민관 반지가 상징하듯, 그것이 그의 일이었고 힘의 뿌리였습니다.

그리고 더 큰 힘을 위해 죽음을 계속 만들어 갔습니다.

그는 똑똑하고 야심찬 군인이었으며 확신을 가지고 성공의 길을 거침없이 나아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굳은 얼굴, 멍과 피투성이 몸뚱이를 이끌고, 잠 못 이루는 날들을 지낼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부활하신 분을 보았는가

그의 시선에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그는 죽음이 가득한 세상 나라를 봅니다.

그가 보는 나라는 죄의 나라이며 힘이 곧 법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짓밟고 죽여야 합니다. 모두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기 마련입니다.

그가 직접 확인한 십자가 예수의 죽음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수는 패배자이며 그 죽음 뒤에 다른 무엇이 더 있을 수 없습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사라진 그 죽은 자를 찾지만, “찾을 수 없는 걸 찾고 있군요. 틀린 걸 찾는 거예요.”라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처럼, 하느님의 영역에 충만한 생명으로 부활하신 분을 그런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또 다른 나라를 향합니다.

그분이 살아났다면, 당신을 형제로 받아주실 거요. 당신 손에 죽었지만.

그분의 말을 직접 들었어요. 귀가 밝아서 목소린 잘 구분해요. 그분은 날 사랑했어요.

그분은 여기 계세요. 마음을 열고 봐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의 확신도, 눈먼 노파의 증언과 막달라 마리아의 고백까지도, 호민관에겐 여전히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을 자제합니다.

돈을 받아먹고,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갔다고 거짓말하는 경비병들의 말도 그냥 믿지 않습니다. 

 

클라비우스는 제국의 시민과 군인으로서, 그 사회가 제시한 삶의 길을 따랐습니다.

제국은 죽음을 쌓아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그는 죽음을 일하지만 평화를 갈망했습니다. 

 

내게 메시아를 보여줘. 살아있든, 죽었든

보이는 것이 보이고 들리는 것이 들리지만, 보이는 너머를 볼 눈과 들리는 너머를 들을 귀가 그에게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나는 부활을 원하는가

그의 태도에도 이중성이 있습니다. 

그는 힘을 지향합니다. 로마의 수많은 신들 중 전쟁의 신 마르스를 숭배합니다.

힘을 가져야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러나 궁극적으로는 삶의 평화를 지향합니다.

단지 그는 그 평화를 이루는 길로써 군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무력을 쓰는 군인이면서도 연민의 정이 있고 피심문자들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가봐. 강압적인 심문은 최대한 미뤄두지.

그가 살아났다는 소문이나 그만 퍼트려.

돌팔매형에 처할까요? / 가두든가… 그냥… 내보내. 보내줘. 정상이 아냐.

 

바라빠는,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한, 다른 의미의 메시아였습니다.

그의 방식은 로마의 무력에 무력武力으로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예수는 무력無力으로 구원하고자 하였습니다.

힘을 추구하는 메시아, 죽음을 만드는 메시아가 있고. 힘을 벗는 메시아, 생명을 만드는 메시아가 있습니다.

 

예수 바라빠요 아니면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요? -마태 27,17

나는 누구를 선택하는가, 그 답에, 내가 부활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가 드러납니다. 

 

예수의 십자가 시신을 처리하고 온 클라비우스는 총독관저 목욕탕에서 빌라도를 만납니다. 

 

자네, 야심이 크잖나. 어디까지 가고 싶나? / 로마요. / 그 뒤엔? / 지위와 힘을 가져야죠. / 그걸로 얻는 건? / 부와 좋은 가정이죠. 나중엔 시골에 집도 짓고. / 그러면 뭐가 남지 ? / 고통에서의 해방. 죽음이 없는 일상 A day without death, 평화. / 결국 목표는 평화다? 다른 길은 없을까?

 

그는 이미, 죽음이 없는 일상을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힘입음을 토대로 죽음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이제는 다른 길, 힘벗음과 생명의 길을 발견했습니다.  

 

음식을 먹으며 자신이 겪은 일을 풀어낸 그는, 반지를 빼 내려놓습니다.

 

식사 값일세.

호민관님, 그 일을 정말 믿으세요?

이건 믿지. 이젠 내가 절대 예전과 같을 순 없다는 거.

 

부활을 거부하던 그가, 부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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