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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감옥’이라고 하니까 벗어나야 할 마음의 고통을 떠올리기 쉽다. 마치 어둡고 깊은 병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김원일의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의 감옥’은 오히려 머물러야 하는 곳이다. 굳이 덧붙이자면 ‘살아가면서 잊지 말고 마음속에 꼭 새겨야 할 기억’이다.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소규모 출판사를 경영하는 ‘나’는 소련 모스크바 국제 도서 박람회에 참가했다가 돌아와, 동생 현구가 경북대 의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현구는 현재 1년 6개월 형을 확정받고 고등법원에 항소 계류 중에 있는 상태로, 입원은 그의 병세가 극도로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현구는 대학생 시절부터 운동권 학생으로, 3학년 때 징집을 당해 최전방 특수부대에서 톡톡히 고생을 한 후 노동 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다가 19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처음 감옥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두 차례 더 옥고를 치르고 마지막으로 올봄에 달동네 재개발 지역 철거 과정에서 철거반원을 구타한 일로 투옥된 것이다. 

 

현구는 6·25 전쟁 당시 목사이신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에 태어났다. 그래서 어머니는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을 두고 ‘지 아버지와 함께 내 몸속에 있다’고 버릇처럼 말씀하신다. 그리고 감옥이 아닌 바깥세상에서도 어머니의 마음속에다 ‘현구가 들어앉을 감옥 한 칸을 마련해 두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결국 현구는 병세가 악화되어 혼수상태에 빠지고, 이때 대학생들과 공원工員으로 이루어진 젊은이들의 농성이 시작된다. 현구의 상태가 절망적이 되었을 때, 그의 아내인 동수 엄마는 현구를 비산동 달동네로 옮기겠다는 뜻을 나에게 내비친다. 이미 젊은이들과 밀약이 되어 있는 상태이며, 달동네에서 빈민장으로 장례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농성이 더욱 격렬해지면서, 경찰들은 병원 안에까지 최루탄을 쏘아댄다. 이때 네 명의 젊은이들이 나타나서 현구의 침대를 밀어 병원 뒤에 대어 둔 봉고차로 끌고 간다. 젊은이들과 함께 현구를 옮기면서 나의 머리에는 전류처럼 ‘이제 현구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다 자신이 들어앉아 살아 숨 쉴, 감옥 한 칸을 짓기 시작했다’는 깨달음이 스쳐 간다.

 

형님,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다 선량하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그들을 철부지 어린아이나 노망든 노인이나 정신병자로 생각해야 합니다. 경우에 없는 생떼를 쓰고, 걸핏하면 싸우고, 거짓말도 하고, 심지어 도둑질도 하지요. 살아가는 데 너무 지쳐 마음마저 그렇게 삭막해져버린 겁니다. 그 어리광과 투정과 사나움을 탓하기에 앞서, 그의 괴로운 삶만큼 나도 그와 함께 아파하지 않으면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살인한 자식조차 조건 없이 사랑하듯,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고는 하루도 그들을 벗으로 여겨 여기에서 배겨내지를 못하지요. 그러나 처음은 봉사한다는 정신에서 출발하여, 희생의 보람을 깨우치다가, 마지막으로 사랑의 실천뿐이라는 종 된 자로서의 겸손으로, 자존심 따위는 잊어버려야 해요.

 

현구의 죽음이 나와 빈민가의 모든 사람들에게 순교로 비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빈민 운동가로서의 현구가 그들을 대하는 자세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살인한 자식조차 조건 없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야말로 사랑의 실천이라는 ‘주님의 종’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지향점이라는 것이다.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현구. 어쩌면 그것은 많은 이들에게 빚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각자의 마음속에 지은 감옥은 그런 단순한 채무 의식이 아니다.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현구는 말한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이해하는 길은 봉사에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 자기의 모든 자존심까지 잊어버려야 하는 ‘사랑의 실천’에만 있다고. 우리는 인간으로서 이 고결한 정신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웃의 삶에 아파하는, 참다운 사랑의 마음으로 지어진 감옥이 각자의 마음속에 있어야 한다. 이 ‘감옥’이 결국 아픔인 것은,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통해서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1025 8면 문학과신앙(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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