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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김의정은 1961년에 등단하여 1990년대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온 여성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가톨릭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의 작품집 대부분이 성바오로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을 잘 보여 주기도 한다. 


『목소리』는 1967년 월탄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김의정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6·25 발발 초기 공산군에 점령된 서울을 무대로 삼고 전개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김의정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천주교 박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인 신부, 외국인 신부, 한국인 수녀, 외국인 수녀, 한국인 평신도 등을 두루 등장시키면서 작가는 그들의 고난을 면밀하게 그려 나간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한국인 신부와 수녀는 처형당하고, 외국인 신부와 수녀들은 공산군에 붙잡혀 북쪽을 향하여 ‘죽음의 행진’을 하게 된다. 여주인공 수임은 전쟁 발발 후에 자원하여 수녀가 된 인물이다. 그녀는 간신히 공산군에 붙잡히는 것을 모면하지만, 스스로 그 행진의 길을 따라가겠노라고 결심하는 것으로 소설은 결말이 난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데 이 마음의 태양은 어찌하여 남에서 북으로 궤도를 밟게 된 것일까? 그것이 자기가 바라는 천주의 섭리라면 수임은 그 길이 제아무리 험악한 길이라 해도 그 태양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걸어가야 한다고 몇 번이고 자신에게 다짐했다.

 

여기에서 ‘마음의 태양’은 수임이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글라라 수녀를 가리킨다. 프랑스 사람인 글라라 수녀가 북으로 강제 이송되는 것을 목격하고서 수임은 자기도 그녀의 길을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수임은 원래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수녀가 되고,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 죽음의 길로 나서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문학 이론가들은 이러한 작품 줄거리에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강조하는 마음의 ‘목소리’가 수임에게 내려진 ‘성소’라면, 그리고 그 ‘성소’에 대한 응답이 수임에게 맡겨진 책무라고 해석한다면 주인공 수임의 행동이 ‘느닷없는’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핵심 부분을 보자.


글라라 수녀와 군관 동무와 수임이, 그들의 시선이 교차되는 점은 모든 장애와 이념과 국적까지도 초월한 따사롭고 부드러운 인간애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짧은 한 문장은 글라라 수녀, 인민군, 수임 세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의 의미를 묘사하고 있다. 북송되는 글라라 수녀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김밥 장사로 가장하여 나온 수임, 이것을 눈치채고도 눈감아 주는 인민군 군관 동무, 그리고 수임의 애끊는 시선을 침묵으로 대할 수 밖에 없는 글라라 수녀의 마음이 찰나의 교감을 이루고, 그곳에 ‘색깔이 다른 목소리’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인간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작가 김의정이 『목소리』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바로 다른 국적, 계급, 이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화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태양’을 따르는 것은 바로 그 화합으로 이르는 길이다. 제각각의 목소리로 어지러운 시기, 미워하는 마음보다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서로를 포용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필요할 때가 아닐까.

 

210221 8면 문학신앙 백그라운드(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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