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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종교란 무엇인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은 이 문제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이 짧은 글 속에 의미를 제대로 담기가 어려워 저자가 주저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은 민요섭이라는 인물이 기도원 인근에서 살해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형사가 이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민요섭이 추구한 신앙의 문제가 조금씩 드러난다. 이 소설은 현재의 민요섭 이야기와 그가 소설 형식으로 쓴 아하스 페르츠의 일대기라는 이중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 속의 소설’이 실질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와 같은 날 태어났다고 하는 전설 속의 인물이다. 반기독교적 인물로 전해 오는 그는 이 작품에서 중심적인 인물로 재탄생한다. 그를 통해 작가는 기독교의 본질에 대하여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인간은 죄의 대가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왜 그래야만 구원을 받는가? 왜 신은 그토록 엄격한 선을 요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확고하다. “오직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면, 아하스 페르츠는 가진 것 없는 ‘사람의 아들’이다. 그는 예수가 빵과 기적과 지상의 권세를 가져와 현실 속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바라지만, 하느님의 뜻만 말하는 그에게 실망한다. 참된 신앙은 신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위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은가. 하느님이 기뻐하기에 이웃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그럼으로써 네 이웃도 너를 사랑할 것이므로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힘들게 할 수 있기에 탐욕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는 지나치게 많이 가짐을 구하지 말라, 많이 가짐이 악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함으로써 네 이웃이 가난해지는 게 악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집을 뛰쳐나와 민요섭을 따르는 인물 조동팔(그는 나중에 교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민요섭을 살해하는 인물이다)도 자신의 행동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선행을 과시하기 위해 돈을 내놓는 자들이 정작 가난한 공사판 인부가 죽어가는 것은 모두 외면하더라고…. 


그 죽어가는 자를 불쌍히 여기고 손을 내미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 신의 말씀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남을 위하는 마음에서 돕고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하스 페르츠는 인간은 이미 신으로부터 지혜를 받았으니, 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의 간섭을 떠나 자신의 의지로써 선악을 판단하고 행동하라고 한다.


“보다 높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와 너의 동류를 위해 네 힘을 다 쏟고, 멀리 하늘에 있는 왕국이 아니라 너희가 발 딛고 선 대지를 위해 네 슬기를 다 펼쳐라.”- <쿠아란타리아 서>


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아하스 페르츠는 또 다른 예수를 상징한다. 작가는 이 동일인이자 대립적 존재를 통해 참된 신앙의 의미를 묻는다. 어쩌면 ‘신의 아들’인 예수가 ‘사람의 아들’이 될 때 우리의 신앙도 좀 더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모른다.


아하스 페르츠는 ‘지혜로서 기름 부은 자’로 불린다. 우리는 어떤가. 복을 받기 위해 하느님을 믿고, 교리를 따르고, 선행을 베푸는가. 아니면 저 마음 깊은 데서 한없는 아픔과 정의가 느껴지고, 스스로의 ‘지혜’와 기쁜 마음에서 남을 향하여 손을 내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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