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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2 14:55

그리스도 페르소나를 입고자 하는 신학생들에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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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분열된 나


임신하게 되었어요. 칼 헨릭은 의대생이었는데 친구에게 데려가 낙태를 시켰어요. 우린 둘이서 행복했고, 아이는 원치 않았어요. 그때는 시기적으로 아기를 가질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 후에 그 일들에 죄책감을 갖게 돼요. 내 판단이 옳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요? 같은 사람인데 왜 생각이 변하는 거죠? 꼭 내 안에 두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바보 같지요?                       -영화, 페르소나. 1966.

 


바보 같은 소리가 아닙니다. ‘하고 싶은 대로’와 ‘해야 하는 대로’ 사이에서 갈등하는 알마. 본능적 동물과 이성적 동물의 양면성은 어쩔 수 없는 인간 현실입니다. 


엘리자벳, 감춘 게 뭐예요? 아들 사진이군요. 지난번에 찢어버린… 그 얘기 좀 해봐요, 엘리자벳. 안 할 거면 내가 할게요. 파티가 있던 날 밤, 맞죠? 아침이 돼 가는데 누군가 이렇게 말했어요… “엘리자벳은 여자로서, 또 배우로서 모든 걸 가졌어. 하지만 모성애가 부족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웃어넘겼는데… 얼마 후, 자신이 그 말을 곱씹고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점점 걱정이 더해갔고 남편을 졸라서 임신을 하게 되죠.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거죠.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당신은 갑자기 겁이 났어요. 책임져야 할 것들과, 무대를 떠나 가정에 매여 살 일이. 출산의 고통, 몸이 부풀어 오를 것도 겁났어요. 하지만 연기를 해야 했죠. 행복하고 젊은 미래의 엄마로서의 역을… 모두들 말했죠. ‘엘리자벳 정말 아름다워.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 그러는 동안 당신은 여러 번 아이를 지우려고 시도했어요. 하지만 실패했죠. 너무 늦었다는 걸 안 후론 아기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아기가 사산되기를 바랐어요. 출산은 아주 길고 힘들었어요. 죽을 듯 고생하고 겨우 겸자 분만으로 아이를 끄집어내야 했죠. 소리 지르며 우는 아기를 보고 혐오와 공포에 사로잡혀 속삭였죠. 빨리 죽어줄 수 없겠니? 하지만 아들은 살아남았고 밤낮으로 울어댔죠. 아기를 증오했어요. 당신은 무서웠고 죄책감이 들었어요. 결국 아기는 친척과 유모에게 맡겨졌고, 당신은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고통이 끝난 게 아니었죠. 아들은 이상할 정도로 엄마의 사랑에 매달렸어요. 당신은 더 방어적이 되어 갔어요. 당신은 차갑고 무관심했어요. 아들은 당신을 쳐다보고, 당신을 사랑하고, 너무나도 다정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아들 모습을 역겨워했죠. 두꺼운 입술과 추한 몸, 눈물 글썽이며 매달리던 눈이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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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실제 모습과 보여지는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는 엘리자벳. 하느님을 닮은 인간과 원죄적 경향을 가진 인간의 양면성도 어쩔 수 없는 인간 현실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두 사람, 이제는 서로 간에 갈등을 일으킵니다. 내 안의 갈등이 타인과의 갈등으로 확장됩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현실에서, 우리들의 실제적 모습은 많은 경우 연기입니다.   


연기하는 삶


일요일이면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좋은 음악이나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의 연주를 들으러 미사에 간다. 토카타가 연주되는 동안만 신神을 믿는(하느님을 믿는 척하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숭고한 정신이 깃드는 순간에야말로 흥이 난다. 나의 묘기를 부려볼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기도대에 무릎을 꿇고 동상처럼 되어버린다. 발가락 하나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 물론 다리가 저려서 죽겠지만 끝끝내 참는다. 원주 위를 기어올라 성수반에 오줌을 갈길까? 이러한 끔찍한 유혹을 물리쳤으니 조금 후에 어머니의 칭찬을 더욱 의기양양하게 받을 수가 있으리라. 내가 한 것은 거짓이었다.                     -사르트르, 『말』


기회가 와서 연기를 한 번씩 해봤는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나는 북한에서 왔어.’ ‘북한에서 이렇게 살았어.’라는 걸 숨기고, 감정 표현이 많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내가, 연기를 통해서, 또 다른 나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너무 큰 매력이었고,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김아라. 위대한 클라스, Ep.6.


여기 연기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이해가 있습니다. 사르트르에게는 삶 자체가 연기였습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는 것이 연기입니다. 반면 북한에서부터 움츠려 살았던 김아라 씨의 경우는,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을 마음껏 펼치며 드러내는 것이 바로 연기입니다.


예술의 가치 
난 연기에 대해선 잘 몰라요. 영화랑 연극을 좋아하지만 거의 못 가요. 전 예술가들을 정말 존경해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예술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뭔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한테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의 용서, 연민, 이런 대사들을 들으며 비웃는 엘리자벳, 급기야 라디오를 꺼버립니다. 그런 그녀에게 알마는 예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예술은, 현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이상을 지향하도록 끌어줍니다. 그러나 그런 예술이 도리어, 삶을 속이는 환상에 머물며, 삶을 정체시키고 퇴행시킬 수도 있습니다. 


전 종교에 대해선 잘 몰라요. 미사를 좋아하지만 자주 못 가요. 종교인들을 정말 존경해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종교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어려움을 겪을 때는요.


종교란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의 길이며 인간과 인간 삶의 궁극적 의미를 탐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 또한 삶을 속이는 환상에 머물며, 삶을 정체, 퇴행시킬 수 있습니다.


일치된 지향점


내가 시험 쳤던 병원에 나이 든 간호사들 기숙사가 있었어요. 평생 간호사로 일해 온 사람들이요. 항상 유니폼을 입고 있고 작은 방에서들 살아요. 평생을 어떤 일에 바쳤다고 상상해 보세요. 뭔가에 신념을 가지고 그걸 이뤄내는 것, 자신의 인생에 어떤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말에요. (수녀님들 삶과 비슷하죠?) 난 그런 게 좋아요. 인간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이렇게 말하는 알마의 볼을 엘리자벳이 쓰다듬습니다. 둘 다 내적 분열과 갈등을 겪지만, 알마도, 엘리자벳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일치된 지향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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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는, 개체의, 모든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페르소나는 ‘외적 인격’, ‘가면을 쓴 인격’, 또는 타협을 통한 ‘보여지는 모습’을 일컫기도 합니다. 순수하게 인간 인격을 뜻하기도 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각 위격도 페르소나라 합니다. 영화감독이나 작가가, 자신을 투영해 내는 배우나 작중 인물을 페르소나라 칭하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들을 통괄하면, 페르소나는 한 마디로 ‘격格’입니다. 그 격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동일한 위격, 인격일 수도 있고, 가면을 쓴 모습인 가격(假格, 가짜 격)일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 우리들의 ‘모습’은 모두 ‘어쩔 수 없는’ 가격입니다. 그러나 그 가격의 성질은 각자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위선적 모습에만 머물며 인격인 양 세상을 ‘속이는 가격’일 수도,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며, 인격을 ‘지향하는 가격’일 수도 있습니다. 똑같아 보일지라도 ‘척하는’ 가격과 ‘지향하는’ 가격의 차이는 무한합니다. 척하는 것은 나락의 길이며, 지향하는 것은 구원의 길입니다. 그것은 정도程度의 차이가 아니라 방향의 차이입니다. 정도로는 세리보다 우월했을 바리사이지만, 방향으로는 세리와 정반대였을 때, 예수께서는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루카 18,14)’고 말씀하십니다. 


신학생들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제로서의 인격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이 충만하도록, 자신들의 인격을 지향하기를 ‘요청’합니다. 그들의 선택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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