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신앙
2021.08.12 14:25

누군가를 바라보기-공지영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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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공지영은 『수도원 기행』이라는 여행기를 펴낼 정도로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집 『별들의 들판』은 베를린 생활을 바탕으로 쓴 연작집인데, 그 가운데 「열쇠」라는 작품이 있다.  


사제의 소명은 무엇인가. 나아가 인간의 소명은 무엇인가. 이 작품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은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민 2세대인 미진과 한국에서 오스트리아로 신학 공부를 하러 온 신부 미카엘이다. 미진은 미카엘 신부를 사랑하고 있다. 그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 스토리이다.


화가 강문자의 집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폭설로 오지 못하고 미진과 미카엘 신부만이 함께 기차를 타고 와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집주인 강문자는 남편의 거듭되는 외도로 인한 스트레스에 엉망으로 취해 잠이 들고 폭설에 갇혀버린 별장에서 미진과 미카엘 신부 둘이서만 술을 마시게 된다. 


이미 미카엘 신부에게 연모의 감정을 고백했던 미진은 그에게 왜 신부가 되었는지 묻는다. 남녀의 사랑이 아닌 규율에 얽매인 사제로서의 삶을 택한 데 대한 후회의 말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미카엘 신부는 자신이 존경하는 박 신부님의 책에서 느꼈던 감동을 이야기한다. 


“신학교를 갔는데 그만두고 싶었다나? 그런데 차일피일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고 내가 그만두면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실망하실까. 우리 본당 신부님은 얼마나 실망하실까. 내 친구는? 내 동료는? 내 은사는? 그래서 용기 없는 자기 자신을 질타하며 시간이 흘러 신부가 되었는데 어느 날 알게 되었다고 하시더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끌려왔다고 생각했던 거. 자기가 눈치 보았다고 생각하는 거. 다른 게 아니라 실은 그게 사랑이고 그게 소명이라는걸… 나 그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어.”


미카엘 신부에게 사제로서의 소명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이며,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사랑이고,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사제의 소명이라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 ‘열쇠’는 그 관계를 상징한다. 독일의 문 잠금장치는 일단 열쇠를 돌려 잠그면 안에서도 절대 그냥 열리지 않는다. 다시 열쇠를 꽂아야 열린다. 그래서 만일 문을 잠근 다음 열쇠를 밖으로 내던진다면 누군가가 그 열쇠를 주워 밖에서 열어주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

 
나란히 붙어 있는 두 개의 방에 묵게 된 미진과 미카엘 신부가 각자의 방 열쇠를 바깥으로 던지는 것으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타인과의 관계를 신뢰하는 마음인 것이다.


술에 취해 잠들기 전, 강 화백은 신부에게 사랑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초콜릿을 한 웅큼 쥐었는데 문득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여자아이도 초콜릿을 집었을까 궁금하더라고, 그런데 그 아이가 빈손인 걸 보고 자신도 집었던 초콜릿을 모두 놓아버렸다고,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일,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일. 그것이 사랑이고, 그를 사제의 길로 이끈 소명이며,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덕목이다. 그럴 때 그 누군가도 나의 닫힌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210815 8면 백그라운드(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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