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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광지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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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펠라 성가와 함께 주일미사가 시작된다. 뜰의 스산한 겨울풍경과는 달리, 성전의 밝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어우러져 은혜로운 시간을 예감케 한다. 아카펠라라고 했지만, 반주자를 구하지 못한 차선책이다. 반주자가 없다고 포기하지 않고, 신자들의 힘을 모은다. 비록 약간의 엇박자가 있고 음이 고르지 못할지라도 진심어린 신자들의 노래는 마스크 속에서도 감동이 되고 예술이 된다. 


무반주에도 굴하지 않는 노래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로부터 미사곡도 노중래 비오 주임 신부의 선창으로, 무반주에도 굴하지 않는 신자들의 노래로 이어진다. ‘못 불러도 괜찮으니 소리만 내어달라’는 사제의 속마음을 간파한 듯 성심성의껏 소리를 합친다. 신자들은 뚱하게 입을 닫고 있을 수 없고, 노래를 부르며 주님 가까이 오른다. 

 

마산의 도심지라고는 하나 작은 본당 석전동성당에는 연로한 신자들이 많기도 많다. 젊은 신자들을 찾기가 힘들어 자꾸 가라앉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노중래 신부는 지난해 부임하여 한동안 이러한 현상들을 파악하고, 지난 7월에 사목위원들을 개편하면서 적극적인 사목방향을 잡았다. 성당에 오면 정답고, 미사에서는 ‘흥이 나고 신명이 나는’ 시간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래서 굳은 얼굴로 앉아 시간을 때우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온통 쏟았다. 무덤덤하게 돌아가는 신자들이 없게 하려고 몸을 던졌다.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목소리를 돋우고, 노래로 장단을 맞추었다. 미사 중간 중간 신자들이 알아듣도록 설명을 붙이며 함께하여 살아 있는 전례가 되도록 했다. 뭐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소신으로 “으샤으샤!” 해댄다.


절대 잊지 못할 사랑과 열정의 시간 
양덕동성당에서 분가하여 1991년 6월 28일 설립한 석전동성당은 석전1동의 공장 부지를 매입하여 공장건물을 임시성전으로 사용하며 시작했다. 사제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분들이 30여 년 전 일들을 엊그제 일처럼 입에 올린다. 김경호 베드로 사목회장, 한명희 안나 부회장, 김창도 요셉 부회장, 신혜정 프란치스카 총무, 황숙희 플로라 사무장은 초기의 애환을 함께 겪었다. 단연 으뜸 화재는 ‘비누장사’였다. 한명희 안나가 말을 꺼내자 너도나도 할 말이 많았다. 비누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서 폐유를 수거하는 일에 나섰던 것에는 목소리가 커졌다. 비누를 굳히고 반듯하게 자르지 못해 우왕좌왕했던 일에는 웃음을 담았다. 교구의 본당마다 팔러 다니고, 전국망으로 팔려 나간 비누에 대해 뿌듯함이 묻어났다. 안나의 눈에 양잿물이 튀어 큰일 날 뻔했던 일도 있었다. 번창한 비누공장 덕분에 무사히 성전을 건축하고 1997년 6월 성전 봉헌식을 치렀다. 그리고 호계성당에 노하우를 잘 전수하고 이름을 날리던 비누공장은 고이 접었다.


천장 보수공사의 시간 또한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김경호 베드로는 지금처럼 큰 책임을 맡지 않은 시절에도 성당에 일이 있으면 솔선수범 소매를 걷었다. 한번은 성전 천장이 찌그덕 했다. 미사 중에 내려앉지나 않을까 모두들 긴장했다. 공사비용이 많이 들까 고민이 컸다. 그때 천장 위 공간으로 조심스레 올라가 부실공사로 불거진 문제를 알아내고 본당 형제들의 힘을 모았다. 업체에 맡기지 않으려고 직장이 있는 형제들이 토요일마다 모여 조금씩 일을 했다. 김창도 요셉도 선원 일을 하면서 휴가가 되면 페인트를 맡아 도왔다. 그러다보니 수리기간이 1년 정도 걸렸지만, 신자들의 손으로 단단하게 복구한 자부심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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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글, 위축, 주눅 같은 낱말은 사절
지난해 6월 본당설립 30주년을 맞았지만, 본당의 날에도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선물만 나누고 아쉬움으로 보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 하더라도 코로나를 방패로 하여 안일하게 지내는 건 문제라고 노중래 신부는 판단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람을 구해야 하고 사랑은 싹트지 않는가. 긴장 속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했다. 쭈글쭈글한 신자들의 마음을 펴게 하고 신앙의 기쁨이 뭔지 알게 하려면 사소하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다. 몇 배로 뛰어다니며 신자들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220213 석전동 순레 성전(홈피용).jpg


성탄선물은 색다르게 준비했다. 하얀 비닐배낭에다 아삭 달콤한 웨하스를 비롯하여 열 가지가 넘는 과자종류를 넣었다. 성탄미사를 마친 거룩한 밤에 저마다 선물배낭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신자들의 어깨에 하얗게 은총의 눈이 내린 것 같았다고 했다. 연말 송년미사에서는 또 다른 이벤트가 있었다. 1년을 뒤돌아보는 동영상을 만들어 신자들과 공유했다. 코로나라는 괴물의 손을 피해서도 주님 안에서 함께한 평화의 시간들을 되새기며 마무리하는 인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동영상은 원하는 경우 멀리 있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전송하여 새해를 맞는 희망이 피어오르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었다. 요즈음 석전동성당에서는 ‘바오로회’를 활성화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때 본당활동의 중심이 되었던 바오로회의 팔팔한 일꾼들은 연로하게 되거나 떠나게 되어 주춤거린다. 사목위원들과 다른 축의 젊은 힘으로 새롭게 정비하여 본당에 활력을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란다.

 

220213 석전동본당순례 자리표시-2(홈피용).jpg


성전에서 앉을 자리를 찾으면 성경구절이 먼저 반겨주는 성당이다. 거리두기를 표시한 자리에 책갈피가 붙어있다. “네 앞날은 희망이 있다.”(예레 31,17)란 말씀의 책갈피가 붙은 자리에서 마음이 열린다. 미사를 마치고 나온 뜰에서는 복지분과에서 진한 국물을 우려 끓인 온기가 담긴 시락국 봉지를 어르신들에게 나눈다. 석전동성당은 위기의 틈새를 찾아내고 “마음을 다하여” 사랑의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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