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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정자 이사벨라

230528 망경동본당순례-성전(홈피용).jpg


천사의 도움으로
성전에 들어서자 햇빛을 받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성화가 장궤틀과 바닥에 반사해 그 실루엣이 마치 오로라를 보는 것 같다. 성전을 지을 때 긴축재정으로 유리창에 선팅지를 붙였는데 20년이 지나자 시트지가 쩍쩍 갈라졌다. 그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신자들이 건의했으나 신자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우진 요한 주임 신부는 선뜻 응답할 수가 없었다. 일은 엉뚱한 데서 풀렸다. 본당을 거쳐 간 정흥식 신부의 소개로 천사가 나타나, 예상 비용의 절반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시공을 해 주겠다는 소식에 신자들은 내년도 교무금을 앞당겨 내거나 익명의 기부자도 늘어났다. 사랑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빗물에 잠겨 무용지물이었던 지하 강당 바닥도 전부 교체하고 성당 건물 외벽과 내부 페인트도 새로 칠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전 로비 천정이 내려앉아 이것도 말끔하게 보수했다.

 

230528 망경동본당순례-성모님(홈피용).jpg


무른 듯 단단하고 수더분하지만 영리한    
건립 25년밖에 안 되었는데도 곳곳에서 균열이 생기고 부서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망경동은 칠암동성당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분리되기 2년 전인 1991년 칠암동성당은 화재가 발생해 감실과 제의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소되었다. 이를 재건하기 위해 손수 벽돌을 쌓으며 온 힘을 쏟은 결과 3년 만에 칠암동성당은 굵은 골격을 갖추어 장엄하게 부활했다. 기쁨도 잠시 망경동성당으로 분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시 새 성전 건립기금을 마련해야 하는 신자들로서는 좋은 재료로 꼼꼼하게 지을 수가 없었다. 패널로 지을 구상도 하였다고 하니 당시 사정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98년 6월 25일 망경동본당이 설립되어 초대 주임 임상엽 마르코 신부가 부임했다. 제1대 사목회가 구성되고 성종태 토마스 모어 회장을 중심으로 신심 단체들도 속속 탄생했다. 전 신자 성경 읽기 운동을 전개해 미사 시간 20분 전부터 성경 읽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모든 자리에는 성경책이 비치되어 있다. 화해와 쇄신 연수, 길거리 선교로 전 신자가 파견자가 되어 세상에 복음화를 실천하려고 했다. 설립 초기 망경동성당은 부족하지만 치열하고 역동적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망경동 신자들의 능력을 믿으셨고 그래서 벼락 치듯 사명을 내리쳤다. 그럴 때마다 사제는 사제로서 신자들은 신자로서 꿋꿋하게 직분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았다. 


겨우 몸을 일으키려는데 2010년 가좌동본당이 생기면서 신자들 절반이 훅 나갔다. 형제자매들과의 이별도 아쉬운 마당에 큰집의 의무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이 일 끝나면 저 일이, 저 일 끝나면 또 다른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목표는 단 하나, 하느님을 향해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망경동 신자들은 그것을 알아차려 온몸으로 껴안고 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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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라, 너는 내 안에 나는 네 안에 있다    
올해 설립 25주년을 기념해 엠마오로 해외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전 신자와 함께할 수 없다는 아쉬움에 떠나는 신자들은 남은 신자들을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동행했다. 처음에는 본당 신자들로만 가는 것으로 계획하였으나 인근 성당 신자들도 합류하는 바람에 무려 42명이 출발했다. 일정 중에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 북부에 있는 예수회의 창설자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생가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이었다.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생가를 선택한 이유는 고비 때마다 헤쳐 나가는 성인의 영성과 기개가 망경동 신자들과 닮았기 때문이다. 가두선교를 불사한 지난날을 연상하면 전교를 위해 수천 리 길을 떠난 산티아고 성인과도 닮았다. 


순례 미사 중에 독서는 우선으로 타 본당 신자들에게 배려하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폈다. 여기서와 같이 그곳에서도 이웃에 대한 배려는 연결되고 있었다. 망경동성당이 자리 잡은 이곳은 습지인데다가 비만 오면 물웅덩이로 변했다. 그래서 빈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토속신앙이 은연중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성당이 들어선다고 하였을 때 그들의 방해와 저항은 심각했다 이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에서의 노력이 몸에 배어 순례길에서도 자연스레 흘러나온 것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서는 이우진 신부가 유럽의 여러 사제와 함께 제대 위에 올랐다. 그동안의 시간이 축복으로 다가왔으며, 미사를 마치고 거대한 향로가 공중을 힘차게 저으며 뽀얀 연기를 뿜어냈을 때 울컥함이 올라왔다.


본당주보성인 정하상 바오로
성전에서 제대를 향해 왼편에는 본당주보 성 정하상 바오로상이 있다. 본당이 설립된 그해 9월 순교자 성월에 성상을 모시고 축복식을 가졌다. 기해박해에 순교하여 1984년에 한국성인 103위로 시성된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신심을 본받고자 했다. 부친 정약종을 비롯하여 모친 유소사와 누이 정정혜 등도 모두 순교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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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순교정신이 깃든 망경동성당은 2016년 7월에 성당 입구 울타리 앞에 ‘형구돌’을 설치하고 전 신자들과 함께 제막식을 가졌다. 형구돌이란 소리 없이 교수형을 집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돌이다. 박해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곳 형구돌은 가로 70㎝ 세로 47㎝ 두께 30㎝이며 중앙에 약 20㎝ 뒤쪽에는 5㎝ 정도의 원추형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앞에 앉아 있는 죄수의 목에 밧줄을 걸고 바위 뒤편에서 당기면서 고문과 죽음의 형벌을 집행했다고 한다. 설치 당시 주임 신부는 순교자 성월을 맞아 밧줄로 형구돌에 목을 매다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죽음으로 신앙을 지켜낸 순교자들을 기리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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