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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민아 마리아 교수/ 조지타운대학교

“감옥 생활은 대림절과 많이 비슷하다네.” 루터교 목사이자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가 친구였던 에버하르트 베트게에게 보낸 편지에 남긴 말이다.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한 혐의로1943년 4월에 체포된 본회퍼는 두 번의 대림절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왜 감옥 생활이 대림절과 닮았다고 생각했을까? 이어지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감옥에서 우리는 기다리고 희망하며 이런저런 - 딱히 결과를 바라지 않는 - 일들을 하지. 굳게 닫힌 감옥의 문은 오로지 밖에서만 열릴 수 있다네.” 자신의 손으로 감옥의 문을 열 수 없는 수인은 옥 바깥에서 문을 열어 줄 선한 힘을 바라고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기다리는 것. 내 모든 힘을 다해 애쓰고 분투하며 달려왔지만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절망의 벽에 가로 막힐 때, 그저 다 포기하고 싶지만,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선한 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끝까지 삶을 긍정하며 명랑함을 잃지 않았던 사형수 본회퍼의 대림이었고, 그 옛날 제국 로마의 권세 아래 무능력한 정권과 종교귀족들과 부자들의 기만과 수탈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히브리 민중들의 길고 간절한 대림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덕에 ‘격리’라는 단어를 유례없이 많이 사용하며 힘든 한 해를 보내고 맞는 이번 대림절, 본회퍼의 감옥 비유가 내겐 어쩐지 위로가 되어 마음에 와 닿는다.

 

201220 지평과초월(홈피용).jpg

디트리히 본회퍼


기다림이 늘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되면 좋으련만, 삶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본회퍼는 나치 패망 불과 한 달 전에 결국 교수형에 처해져 서른여섯 짧은 생을 마감했다. 천둥 같은 목소리로 세상을 바꿀 메시아를 기대했던 히브리 민중들의 기다림도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응답되었다. 그들이 바라던 메시아는 가난한 난민 부부의 몸을 통해 더러운 마구간으로 찾아 왔고, 돈도, 권력도, 번번한 교육 배경도 없는 떠돌이 설교자가 되어 살다 결국 십자가에 달려 본회퍼보다도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느님은 본회퍼의 기다림도 히브리 민중들의 기다림도 그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시기보다 다른 지평으로 그들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응답하셨다. 본회퍼의 안타까운 죽음은 정의로운 삶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를 일깨우는 선한 힘으로 남았고, 그리스도 예수는 죽음을 거쳐 생명의 떡이 되어 지금도 우리 삶으로 부활하고 있다. 


하느님의 응답은 인간의 지평에 머물러서는 이해할 수 없다. 하느님의 원칙과 인간의 원칙이 계속해서 갈등과 긴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를 삶으로 이어가는 자세다. 칼케돈 공의회의 신경은 강생의 의미를 하느님과 인간이 연합하여 “두 본성 안에서 혼합되지 않으시고, 변화하지 않으시고, 분리되지 않으시고, 나누어지지 않으시고, 인식할 수 있으며 어디에도 일치 때문에 본성들의 구별이 없어지지 않으시는” 채로 존재한다고, 모호하기 그지없는 문장으로 표현한다. 하느님의 지평과 인간의 지평 사이에 존재하는 필연적인 간극을 인위적으로 메워 가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갈등과 긴장을 그대로 드러내는 언어를 택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명확한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비를 마주하여 우리 지평이 확장되고 삶이 변화하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나의 지평이 협소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지평을 향해 마음을 여는 시기가 대림절이다. 크신 하느님 당신이 어느 누구의 시야도 닿을 수 없는 넓고 높은 지평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시야를 아우르며, 모든 이들의 고통과 설움을 안타까이 보듬으며, 모든 이를 살게 하는 숨을 불어 넣어 주시리라는 것을 바라고 기다리는 마음이 대림절의 마음이다.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를지라도, 그로 인해 내 계획을 포기해야 하고 내가 꿈꾸었던 것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나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내 마음 깊은 곳의 선함이 일깨워져 당신의 선함과 하나 되리라 믿는 것이 대림절의 신앙이다. 당신의 자비로운 숨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숨이 내게 닿아 있듯 모두에게 닿아 있어 당신 안에서 차별 없이 함께 숨 쉴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큰 축복 아닐까.


내 뜻이 아니라 당신 뜻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는 대림절의 신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은 어떤 모양일까. 본회퍼보다도 많은 겨울을 감옥에서 보낸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의 글이 떠오른다. 선생은 추운 겨울의 감옥살이를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다. 여름의 감옥은 겨울보다 지내기 편할지 몰라도 무더위 속 서로 붙어 칼잠을 자야 한다는 그 하나의 사실 때문에 내 옆에 있는 이를 증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선생에게 가장 끔찍스러운 현실이었다. 미움의 원인이 고의적인 소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절망적인가. 바꾸어 말하면, 칼바람이 드세고 차가운 감옥의 바닥이 살을 에는 혹독하기 그지없는 겨울 감옥살이라 하더라도 함께 있는 이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기다림은 견딜 만하다. 옆 사람의 존재로 인해, 아니 옆 사람을 대하는 나의 마음에 따라 기다림은 형벌이 되기도 하고 축복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기다림을 형벌로 만드는 미움의 요소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그것이 차별과 미움을 조장하는 법이건, 특권을 재생산하는 거대 조직이건, 다른 의견을 갖고 있으면 미워하는 게 당연해져 버린 세태이건, 아니면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게 하는 자기혐오이건, 두터운 안개처럼 내 지평을 가로막아 하느님의 지평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숱한 미움들을 짚어 보고 조금씩 지워 나가는 연습을 하며 이번 대림절을 마무리해 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성탄 축일 아침엔 세상 모든 이들의 새 아침을 축복하며 이렇게 기도해 보자. “선한 능력에 언제나 고요하게 둘러싸여서 보호받고 위로받는 이 놀라움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디트리히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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