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칼럼
2021.05.13 15:18

성령 강림 대축일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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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민아 마리아 교수/ 조지타운대학교

이제 일주일 후면 부활 시기를 마감하고 다시 연중 시기로 들어가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는다. 오순절(五旬節, pentekonta hemeras) 이라고도 불리는 이날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두 의미가 각별하여 각각 유대교 탄생의 날로, 그리스도 교회 탄생의 날로 기념된다. 어떻게 한 축일이 두 종교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되었을까? 그 유래는 유대인들의 농경 문화에서 비롯된 칠칠절(七七節, Shavuot)로 거슬러 올라간다. 칠칠절은 밀과 보리 추수 시작을 축하하며 첫 열매를 하느님께 드리는 초실절(初實節) -맥추절이라고도 하며, 이날은 유대 민족의 이집트 탈출 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시기적으로 겹친다- 을 기점으로 일곱 번의 일곱 날, 즉 49일에 걸쳐 곡식을 거두고, 그 이튿날인 50일째(五旬節) 수확의 마무리를 기념하기 위해 성대한 축제를 벌이는 농경 절기이다(레위 23,15-21, 민수 28, 26-31, 신명 16, 9-12).


유대인들은 기원후 132년~135년 유대 민족의 지도자이며 당시 메시아라고 불리던 바르 코크바(Bar Kochba)가 로마 제국에 맞서 일으킨 저항 운동을 기점으로 오순절의 의미를 확장했다. 제3차 유대-로마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저항운동의 실패로 유대인들은 무려 985개 마을이 폐허가 되고, 58만 명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이들이 노예로 팔리는 참혹한 보복을 감당해야 했다. 땅과 터를 잃고 도시로 흡수되어 농경 축제인 오순절을 기념하기가 어려워지자 (유대인들에게 절기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계약 백성으로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기억하는 시기이므로 반드시 기념해야 한다), 유대 지도자들은 탈출기의 기록을 토대로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사건을 오순절의 의미에 덧 입히기로 결정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오순절은 수확의 감사를 올리는 날인 동시에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민족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유대교 탄생의 축일로 정착하게 된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상기함으로써 고통의 시간을 버텨 나가고자 했던 유대 민족의 의지가 이 축일에 담겨 있다.

 
그리스도교 탄생 축일로서 오순절은 또 다른 의미로 고통과 함께 기억되어야 할 축일이다. 성령 강림 사건이 등장하는 사도행전이 기록된 것은 80~90년이고, 바르 코크바의 저항 운동은 그로부터 50여 년 이후의 일이니,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오순절은 아직 율법 수여와는 무관한 농경 축제로서 의미를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마다 이 축일을 맞으면 유대인들은 노동을 하지 않고 성회에 모여, 누룩을 넣은 떡과 흠 없는 일년생 어린 양과 젊은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번제로 올리는 성대한 축제를 거행했다. 헤롯의 도시 정책으로 새 단장을 하여 한껏 화려해진 예루살렘에서 이 축제는 더욱 떠들썩하고 흥겨웠을 것이다. 뿔뿔이 흩어졌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오랜만에 예루살렘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축제의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예수의 제자들이다.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위험한 도시였다. 얼마 전 사형당한 정치범 예수의 추종자들인 그들은 남들의 이목을 피해 꼭꼭 숨어 다녀야 했을 것이다. 뿐이랴, 부활한 예수를 만나 용서를 받았다고는 하나, 도시의 골목과 건물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굴욕과 설움과 수치의 시간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함께 처형되는 것이 두려워 자신들의 석방을 조건으로 스승을 내주었던 배신의 장소, 대사제 카야파 관저가 목전에 있다. 단 한마디 원망도 없이 순순히 올무에 묶여 끌려가던 예수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개처럼 소처럼 매질 당하며 오르던 골고다 언덕도 보인다. 그가 죽던 그날, 성 밖 처형장 봄볕의 따사로움이 이제 질척한 늦봄의 더위로 피부에 스며들어 그들의 죄책감을 옥죈다. 그러나 그들은, 가능한 멀리 떠나고 싶었을 이곳에 다시 모여들었다. 부활한 예수가 그들에게 이 치욕의 도시에 머무르며 성령을 기다리라 했기 때문이다(사도 1,4). 회한과 혼란과 두려움과 불안의 복잡한 감정을 품고 제자들이 모인 곳은 작은 다락방이었다. 그 다락방에, 예수가 말했던 그 성령이 왔다. 세찬 바람과 같이, 불의 혀와 같이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내렸다. 그들의 마음이 성령으로 가득 차, 자신의 언어가 아닌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한다(사도 2,1-4). 이 신기한 현장에 웅성거리며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비겁하고 두려웠던 제자들이 이제 예수가 가르쳤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 교회의 탄생이다.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발생한 일 중, 특히 성령을 받은 이들이 자신의 언어가 아닌 낯선 방언, 즉 타인들의 언어로 말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바르티아, 에집트, 프리기아, 메대, 엘람 등 다른 고장에 정착하여 살다 자신의 모국어를 잃어버린 이들, 서로 소통할 수 없어 분열되어 각자도생하던 이들이, 오순절 사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참여하며, 정치범 예수의 친구들이자 천대받던 갈릴래아 촌사람 무리인 제자들의 신들린 듯한 증언을 경이롭게 듣고 똑같이 이해하고 있다. ‘말의 장벽에 의해 분열된 사람들’이 자신을 초월하여 타자의 말을 듣고 타자의 말을 하며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안병무 전집 2권』 “민중해방과 성령사건”). 이 오순절 사건을 기점으로 갈릴래아 민중들은 예수가 처형된 치욕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기존의 전통, 제도, 권위 아래서 눈치만 보던, 권력과 법과 지방색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민중들이 이제 그 경계를 넘어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리스도 교회의 탄생은 자기 중심성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일부로 변화하는 초월의 사건이다.


성령 강림절, 혹은 오순절에는 이렇듯 잊지 말아야 할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다. 땅과 가족과 삶을 잃어 버린 이들의 이야기, 그 와중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뿌리를 잊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여 자유와 해방을 위해 기꺼이 투신했던 이들의 이야기들이 두 종교의 탄생에는 아로새겨져 있다. 마치 우리의 오월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을 불러 오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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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Cristo de la Liberacion(해방의 그리스도) by Maximino Cerezo Barre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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