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칼럼
2021.11.18 13:46

빛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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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민아 마리아 교수/ 조지타운대학교

그녀가 미국에 체류하게 된 지 이제 3개월이 되었다고 했다. 그녀의 고향 에티오피아에서는 지난 1년간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와 반군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TPLF)이 대화를 거부하고 서로 군사력을 키우며 치킨게임을 벌이는 동안, 국민들은 끔찍한 지옥을 견뎌내고 있다. 민간인, 정부군, 반군 사망자까지 합칠 경우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희생자 집계마저 어렵다. 피난민 신세로 전락한 이들은 250만 명이 넘고, 수년째 이어진 기근으로 식량 공급도 끊겼다. 광폭해진 군인들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수백 명을 강간하고 남성들은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신문에서 읽었던 이 참혹한 이야기들은 그녀가 고향에 남겨 두고 온 가족들과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한국에 있는 친구를 통해서였다. 이러이러한 처지에 있는 이인데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는 청을 받았고, 마침 살고 있는 지역이 가까워 어렵지 않게 연락이 닿았지만, 내가 딱히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선한 얼굴의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 그녀는 에티오피아에 있는 남동생이 바로 일주일 전에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마음을 추스르기가 너무 힘들다고, 마스크 위로 번지는 눈물을 훔치는 그녀에게 나는 어떻게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라 가만히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살 수 있는 사람만이라도 살아야 한다고, 자신의 등을 떠밀어 망명을 보낸 채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생사를 매일 같이 확인해야 하는 그 고통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정교회 신자인 그녀는 마음을 기댈 공동체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이민자가 많은 워싱턴 D.C.에서 정교회 공동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다들 정치적인 입장으로 분열되어 갈 때마다 상처를 받곤 해 차라리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주말, 나는 기도할 곳을 찾는 그녀를 데리고 내가 아는 성당을 찾았다. 함께 초를 밝히고 무릎을 꿇으며, 무엇을 위해 기도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남동생의 영혼을 위해, 또 에티오피아의 정치 지도자들이 대화를 시도하도록 빌어 달라고 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전쟁과 폭력과 증오의 세상에서 목숨을 잃은 그녀의 남동생과 또 모든 애처로운 영혼들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기를, 또 기근으로 갈라진 땅처럼 메마르고 분열된 세상에 하느님의 평화와 치유가 깃들기를 기도했다. 오후를 함께 보내고 각자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녀는 그 선한 얼굴이 더 선해 보이는 웃음을 띠며 또 만날 날을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그녀의 선한 웃음을 오래 생각했다. 그 웃음은, 폭력과 증오의 세상에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또,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인들에게 전하는 권고에서 선포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그가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고 했던 구절이다.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빛은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습니다.”(에페 5,8-9) 에페소서의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이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 사이에 벌어지는 ‘대심판’을 통해 완성될 것이라 선포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은총은 심판, 징벌, 보상 등의 법적 범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실현된다는 바오로 사도의 신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의 승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삶을 통해 열매를 맺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폭력과 증오의 세상에 산다고 하여 폭력과 증오를 입지 않으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행위에 끼어들지”(5,11) 않는다. “빛을 받아 드러나면 빛의 세계에 속하게”(5,13) 된다는 믿음, 결국 어둠을 물리치는 것은 빛이신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빛이 삶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라는 믿음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내 에티오피아인 친구가 그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웃음으로 보여 주었듯이 말이다. 


바오로 사도가 그토록 애정과 열정을 담아 선교했던 에페소 교회는 그가 체포되어 순교한 직후, 그의 제자 디모테오가 맡았다가 그마저도 순교한 후 사도 요한이 맡아 돌보게 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 부탁한 말을 따라 평생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살던 사도가 노구의 마리아를 모시고 정착했던 곳이 에페소 교회다. 사도 요한은 에페소인들을 향해, 당신들의 “수고와 인내를 잘 알고” 있으며,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과 “허위를 드러낸 것”과 “참고 견디어 냈으며 낙심하는 일이 없었던 것”(요한의 묵시록 2,2-3)을 잘 알고 있다고 칭찬하지만, 당신들은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고 있다. 오랜 이단 시비와 진리 검증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분별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하느님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던 에페소 공동체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미움과 배제와 분열을 하느님의 정의로 오해하여, 삶을 통해 사랑이신 하느님을 드러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잊고 있었다.


사도 요한이 에페소인들에게 간곡하게 당부한 것은 사랑이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요한의 첫째 편지 4,6-7) 에페소 교회뿐 아니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또한 새겨 들어야 할 당부다. 곧 대림이 시작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이다. 남은 나날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분, 즉 사랑을 내 마음으로부터 일깨워 보는 건 어떨까. 그러기 위해 전쟁과 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수많은 목숨들을 위해 촛불을 밝히고, 차별과 증오로 인해 사회의 위험한 변두리로 내쳐진 목숨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211121 지평과초월(홈피용).jpg

에티오피아 내전 상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시위(워싱턴 D.C.)

 

※ ‘지평과 초월’은 이번 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해 주신 조민아 마리아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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