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동(Since 1980)

by 관리자 posted Nov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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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241-6748
팩스 241-6748
주소 51331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남12길 16
홈페이지 http://san.cathms.kr

산호1.jpg

 

산호1동지역은 원래 마산만에 인접한 저지대의 논이었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속칭 ‘반내들’이라 불리는 쌀 경작지로서 주택은 거의 없었고 마산시내에서 진해 부산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연결되어 있던 가촌 형태의 한적한 도시였다. 그런데 1960년대 중·후반에 수출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인근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이 가동됨으로써 산호1동도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즉, 어려웠던 시절 전국에서 수 만 명의 근로자가 마산으로 유입되면서 신 주택지 개발이 불가피하여 산호1동지역에 토지구획 정리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본당 소재지역의 위쪽 부분(당시 정수장 뒤쪽)부터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뒤이어 마산에서 처음으로 산호동지역에 첫 고급아파트인 용마맨션이 준공됨으로써 명실공히 마산시민의 베드타운(Bed town) 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의 활발한 가동으로 인구증가를 촉진하게 되었고, 동시에 상가 밀집지역이 조성되면서 나중에는 동마산지역과 기존 마산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산호1동의 지역특성상 거주지역으로서는 비교적 잘 조성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고, 또 그 당시로서는 전국 다른 어느 지역보다 젊은이들과 산업현장의 생산 연령층과 유동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본당 관할구역은 1979년까지 상남동성당 구역이었다. 상남동성당의 경우 그 지역이 매우 넓은 데다 산호1동은 지리적으로 상남, 양덕, 남성동성당의 중간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신자들로서는 그때 그때 개인의 편의에 따라 미사에 참례하고 있던 실정이었다. 또한 수 만 명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던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 확장 등으로 산호1동은 물론 인근 동마산지역이 크게 발전함과 동시에 전국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어 산호동지역에 본당 신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교구 참사회에서 1979년 4월 상남동성당을 분할하여 산호동성당 설립을 결의하고 부지매입에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79년 산호1동 233-4번지 부지 241평의 부산우유처리장을 불하받아 본당 설립에 필요한 부지를 확보하였다.

 

 

미사시간은 본당 홈페이지나 전화로 문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