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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부활 대축일 담화문-<그분께서는 부활하시어>

posted Jun 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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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부활 대축일 담화문

<그분께서는 부활하시어>

(마르 16,6)

사랑하는 교우, 지도자, 성직자 여러분!
곳곳에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감지하는 계절입니다. 죽어있던 것처럼 보였던 생명은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생명의 계절에 우리 신앙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대축일을 경축하고 기념합니다. 모든 교우, 수도자 그리고 성직자 여러분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가득 받으시고 기쁜 부활 축일을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지난 0일 동안 사순 시기를 보내면서 고행과 보속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그분의 부활을 기다려왔습니다.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부활의 사건과 의미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마르 8,31; 9,31; 10,33-34; 마태 16,21; 17,22-23; 루가 9,22). 물론 이러한 예고를 그분의 제자들마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희망을 좌절시켰을 뿐 아니라, 믿음까지도 앗아갔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배반하였고, 부인했으며 끝내는 스승을 버렸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희망의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로부터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골로 1,18)이 되셨습니다. 그 결과 계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희망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삶이 죽음에 굴복 당하지 아니하고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생명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시며, 그분을 믿는 자는 죽었을지라도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요한 11,25).
하지만 우리의 삶은 온통 죽음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곳곳에 죽음의 문화와 반생명의 문화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이 보여주는 모습은 내일을 전제한 삶이 아닙니다. 미래를 전제한 삶이 아닙니다. 오늘을 절대화하고, 순간과 찰라를 절대화하는 삶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전적으로 배제한 삶입니다. 하지만 부활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무로 돌리려는 죽음마저도 저지할 수 없는 힘을 분출합니다. 부활은 영원한 생명의 신비에 참여한다는 믿음과 희망의 토대를 제공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죽을 몸까지도 살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 8,11 참조; 1데살 4,14; 1고린 6,14; 2고린 4.14).
부활의 전제 - 십자가의 죽음
부활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 전제는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죽어야만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는 역설이 부활의 전제입니다. 이러한 죽음은 희생의 모습으로, 인내의 모습으로, 양보의 모습으로, 관용과 침묵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순교의 모습으로 그리고 자기 퇴출의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타인 주심적인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나를 뒤로 물리고 너를 나보다 먼저 앞세우는 삶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희생시키고 죽이고 깨뜨리는 일 없이는 십자가의 죽음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던지는 예수님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이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우리의 삶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나를 먼저 앞세우고 너를 뒤로 밀치는 삶입니다. 나보다 앞서가는 너의 뒷덜미를 잡아 내 뒤로 밀쳐버리는 삶입니다. 서로를 적대시하며 위협과 불안을 부채질하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삶입니다. 듣지 못한다고 하여 악담을 하거나, 보지 못한다고 하여 그 앞에 걸릴 것을 두는 삶입니다.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는 삶입니다. 도대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경외하는 겸손을 멀리하는 삶입니다. 할 수 있다고 아무 것이나 하려고 덤벼드는 교만과 방종의 삶입니다. 부활이 가져다주는 결실을 누리기를 원하지만 부활의 전제인 십자가의 죽음을 멀리하고 외면하는 삶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려고 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그분처럼 추방당하고 미움받고(마르 13,13; 요한 16,2 참조) 고난을 겪을 각오를 해야합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요약하고 완성하고 계시합니다. 그분은 죽도록 하느님을 섬기고 인간에게 봉사했음으로 철저한 순종과 완전한 봉사 한가운데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의 메시지는 항상 부활의 메시지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죽음 안에 생명이 깃들어있고, 생명은 죽음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야만 새로운 생명을 얻어 부활한다는 역설은 논리를 초월합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비록 이해될 수 없는 논리지만 나름대로 논리(1고린 1,18참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실상 우리는 갖은 환난을 다 겪어도 곤경에 빠지지 않고, 가망이 없어도 실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으며, 맞아 쓰러져도 죽지는 않습니다>(2고린 4,8-9). 아울러 <알려지지 않은 자 같으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죽은 자 같으나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처벌을 받은 자 같으나 처형되지 않았습니다. 슬퍼하는 자 같으나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이를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자 같으나 모든 것을 차지하고>(2고린 6,9-10)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삶 - 죽음의 삶
예수께서는 사고로 인해 죽음을 당하거나 아니면 자연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했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결코 아름다운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눈길을 끌만한 볼품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습니다.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습니다.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폭행을 저지른 일도 없고 입에 거짓을 담은 적도 없었지만 그는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했고 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습니다.>(이사 52,13-53참조)
예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자기 비움이 발생하였습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순종과 겸손이 발생하였다.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하지 않으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시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죽음의 방법을 보여주셨습니다. 죽음의 방법 그것은 또한 삶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는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주님으로 신앙고백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을 따르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죽음의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라는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고 희생을 감수하고 죽음까지도 받아들입니다(사도 9,16 참조). 일상의 삶에서 겪는 온갖 시련과 수모를 인내하며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필립 3,13 참조). 언제나 천상의 것에 마음을 두고(골로 3,1)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1고린 15,58),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고(골로 3,5), 낡은 인간의 껍질을 죽이고(골로 3,9),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는 희망으로 날마다 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간직하며(필립 2,5) 살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
십자가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의 존재 원리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죽어야만 산다는 믿음의 역설을 받아들임으로 부활하신 분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약속하는 생명에 동참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기원합니다. 부활은 죽음의 순간에 그 참모습을 드러냅니다. 절망의 순간에 희망은 그 진면목을 드러냅니다. 부활하신 분의 큰 축복 속에 영원한 생명을 향한 동경을 감자히시기를 기원합니다.


2003년 부활 대축일에,
교구장 안명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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