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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부활 대축일 담화문-‘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주님’

posted Jun 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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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부활 대축일 담화문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주님’

(요한 20,9 참조)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감지하는 이 계절에 우리 신앙 공동체는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을 경축하고 기념합니다.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시어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주님께서 교우,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들에게 강복하시어 부활의 큰 기쁨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들은 지난 사순시기 동안 고행과 보속 그리고 기도로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을 키워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부활을 소망해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되셨지만 하느님의 구원 섭리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역시 부활하리라 믿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1.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다시 살아나시어 나셨다는 사실(1고린 15,3-5)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연습삼아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부활신앙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의 선포도 허된 것이고 믿음도 헛된 것입니다>(1고린 15,12-1참조).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요한 11,25-26)임을 믿는 사람들이고, 이미 부활이 약속하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은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로마 4,17)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일으켜진 사람으로(골로 2,12참조) 하느님의 작품이며(에페 2,10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입음으로써(갈라 3,27) 새롭게 창조된 사람입니다.
2.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셨는가 하는 물음은 우리 신앙인들로 하여금 고뇌하게 하는 물음입니다. 이 물음은 부활의 의미를 묻는 물음일 것입니다.
죽어서도 영원히 하는 삶을 선택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은 또 다른 너와의 삶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삶과 자녀의 삶이 무관하지 않습니다. 스승의 삶과 제자의 삶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삶 또한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아니하고 너와 더불어 공존하는 것을 본질로 합니다. 나와 너는 서로 상생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께서도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서로 의지하고 상생하는 공존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너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너를 위해 나를 희생하고, 인내하고 절제하며 나를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게 하고 끝내는 나를 죽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나를 죽임으로써 너를 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이 과연 의미있는 삶인가 하는 회의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우리의 스승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본보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삶의 의미가 충만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벗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5,13). 그리고 예수께서는 실제로 벗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고,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3. 부활은 영원한 삶의 전제입니다. 그런데 부활과 영원한 삶은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 대가가 바로 수난과 고난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난과 고난의 길을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수모의 길이고 버림받은 길입니다. 승리를 미리 계산한 길이 아닙니다. 지상명령에 복종하는 길입니다. 무릇 진정한 사랑은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길입니다. 십자가는 패배의 상징이요, 무력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무한한 힘을 보여주는 표지였고, 하느님께 대한 순종이야말로 최상의 자유임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 2,8). 예수께서는 죽으시고 묻히셨지만 결국 부활하셨습니다. 철저한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이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본보기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른다 함은 그분께서 걸어가신 길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그분과 함께 사는 삶을(2디모 2,11) 선택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 죽은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결심합니다(1고린 2,2).
4.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비추어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온갖 선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나약성 때문에,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던 선을 이제는 실천할 것을 다짐합니다.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해주셨다(1고린 2,9)는 사실을 헤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죽음을 물리쳐 생명을 주시고, 묶임을 풀어 자유를 주기 위해 오셨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풀어야 할 맺힘이 겹겹이 남아 있습니다. 불안, 두려움, 상처, 죄의식 등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묶어 두고 있는 사슬들이 여러 겹으로 생명을 숨막히게 합니다. 편견, 천대, 질투 등 남의 시선에서 오는 사슬들이 사람의 삶을 옥죄입니다. 지금 우리 삶의 모습은 내일을 전제한 삶이 아닙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을 전제한 삶이 아닙니다. 서로의 다툼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곳곳에서 마비된 양심을 살려내고, 만연하고 있는 갈등과 이기심의 장벽을 허물고, 교만의 껍질을 깨뜨리고, 분열을 극복하며, 생명을 위협하고 경시하는 풍조와 <죽음의 문화>대신 <생명의 문화> 창조에 헌신하고, 빠른 속도로 무너져 가는 가정, 전도된 가치관, 전쟁과 폭력 등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일에 투신하고자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는 인간이 그 영원한 생명의 원천을 거부하는 것은 참으로 수수께끼입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갈망은 오히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의 운명에 순순히 따를 것을 종용해 왔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이러한 운명론에 빠져있던 인간들을 그 질긴 사슬에서 풀어주셨고, 스스로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는 결코 죽음으로 끝나고 말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어떤 처지에서도 희망의 창문이 열려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져다주신 이 희망을 감추어 두어서는 안됩니다.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로마 8,24).
나를 죽여 너를 살리는 부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부활하신 분의 큰 사랑과 축복을 기원합니다.


2004년 부활 대축일을 기념하면서
교구장 안명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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