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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성탄 대축일 담화문-목자들은 이 모든 일을 기리고...

posted Jun 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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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성탄 대축일 담화문

목자들은 이 모든 일을 기리고...

(구라 2,20)


사랑하올 교우,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
우리는 대림절을 지내면서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드디어 가난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이천 년전 들에서 밤을 지새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도 구세주의 탄생을 기렸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은 모든 백성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기쁨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우리 모두 함께 경축합니다. 그리고 구세주께서 주시는 축복을 풍성하게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의 현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구세주의 탄생을 기쁜 마음으로 경출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암울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희망과 미래도 잃어버렸습니다. 좌절과 절망, 이기심과 독선, 탐욕과 교만만이 남아있습니다. 인격과 교양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대신 천박함과 가벼움만이 지배합니다.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까닭없는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전쟁과 폭력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힘의 논리만이 세계를 움직이는 질서입니다. 약육강식의 문화만 남아있습니다. 서로 함께 살아가는 공생과 상생, 화해와 일치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신 분열과 불화가 난무합니다. 다름과 차별을 구별하는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그어 놓은 선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너는 적입니다. 나와 생각을 조금 달리한다는 이유만으로 너는 적입니다. 적은 결코 화해와 용서의 대상이 아닙니다. 무찔러 없애버려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적은 자기 합리화와 정당화를 위해 이용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진리, 사람은 여러 사람 가운데에서 비로소 사람의 참 모습을 드러낸다는 진리, 사람은 마주보면서 부단하게 서로를 섬세하게 어루만지면서 너의 무늬를 쓰다듬어야 하는 공존의 존재라는 진리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저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이상 그 자체로 거룩한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은 더 이상 소중하지도 귀하지도 않습니다. 나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너의 생명도 수단으로 삼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인간의 상품화와 도구화가 일상화되어 버렸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도덕적 불감증에 걸려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모욕감과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또한 분주하다는 것을 구실로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빼앗기며 살아갑니다. 사유를 중지하고 고뇌하지 않으며 자신의 행위와 행위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합니다. 책임을 져야한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너입니다. 자기 통제와 억제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심사숙고 대신 순간적인 충동에 따라 행동하면서 우리의 삶은 점점 동물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 동기는 생물적인 욕구 충족에만 기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만에 젖어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죽도록 맞고서도 타이르시는 말씀을 귓전으로 흘려버리고, 도무지 하느님께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예레 5,3 참조). 이처럼 어둡고 참단한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시는 구세주께서 기쁨, 희망, 평화, 사랑, 화해, 상생의 기쁜 소식으로 다가온다고 합니다.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 죽음을 뛰어넘는 생명으로 다가온다고 합니다.
성탄의 의미 - 기쁨의 복음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시는 구세주께서는 하느님의 인간화, 즉 강생의 결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운명에 동참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어두움과 부조리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인간이 되셨고, 낮은 곳으로 육화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실해 가고 있는 아픔을 치유해 주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고,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존엄성과 권리를 침해하는 비인간화의 물결, 반생명의 물결로 신음하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시어 인간성의 회복을 선언하십니다. 인간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시해 줍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도리어 다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니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시어 여느 사람 모양으로 드러나셨습다...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필립 2,6-8 참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성탄의 삶

오늘 밤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탄생하시는 구세주께서는 참으로 부유하셨으나 자신을 비우시어 가난함 삶을 선택하셨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성부의 명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구세주께서는 더 이상 가난할 수 없는 모습으로 태어나셨으나 그 때문에 부끄러워하시거나 자존의 품위를 잃어버리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마다하고 사람의 모습을 선택하시는 겸손의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자기의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마련하지 않는 비움의 삶을 사셨으나 행복하게 사셨고,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아니하는 자유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언제나 진실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에 힘이 있었고 반듯하였습니다. 당당하였고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아픔에 동참하고, 인간의 아픔을 측은지심으로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고나대하고 넓은 마음으로 인간의 모든 허물과 탓을 감싸주셨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추종하였고, 주님으로 신앙 고백하였으며 그분의 삶과 죽음을 본받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 나서기도 합니다. 그분이 가신 길은 우리 역시 마땅히 가야할 길입니다. 진리의 길이자 영원한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너무 큰 것에 열광합니다. 작은 것을 무시합니다. 하지만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작은 것 앞에 겸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탄의 대축일은, 우리의 삶은 언제나 크고 거대한 계획이나 구상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은 마음속에 새기어 곰곰이 생각하는>(루가 2,19) 소박하고 평범하며 일상적인 것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구세주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철저하게 자기 개방, 헌신 그리고 투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자신을 자기 안에 가두어 두는 폐쇄의 삶이 아니라, 자신을 열어 너를 위해 나를 내어 던지는 개방과 열림의 삶을 사셨습니다. 끝내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내어놓으시는 사랑의 극치의 삶을 사셨습니다. 이로써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살과 몸 그리고 생명을 버림으로써 실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진정으로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리고 목숨을 내어놓아 사랑하지 않음이죄라는 것을 보여 주셨고, 모든 참된 사랑은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까닭고 밝혀주셨습니다. 목숨을 바치지 않고서는 감히 사랑을 입에 담지 말라고 하십니다.
구세주께서는 하느님으로서의 본질을 마다하시면서까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낮은 곳으로 임하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도 자신을 낮추어 낮은 곳으로 육화해야 한다는 명령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육화는 나 자신까지도 포함하는 주위 세계의 인간화를 위해 헌신하고 온갖 비인간화의 물결을 거슬러 저항하면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풍토의 조성에 앞장서로 투신할 것을 요구합니다.
지금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척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과 긍지를 지키면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무시당하지 아니하고 인정받고 존중받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치와 모욕 대신 사랑 받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하루만이라도 뜨겁게 사랑하다 주어도 좋을 사랑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구세주께서 보여 주신 삶을 따라 살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작은 나를 버림으로서 더 큰 나를 취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밤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태어나시는 구세주께서 보증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시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초라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시는 구세주께서 교구민 모두에게 큰 사랑과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분의 크신 사랑으로 기쁨과 희망을 되찾고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너그럽고 관대한 마음을 나누는 성탄 대축일을 함께 경축하기를 기대합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 모두와 우리 교구에 보내주신 하느님의 각별한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축복 속에 다가오는 새해와 하느님의 손에 맡겨드리며 시작한 새해 그리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결코 만나지 못할 새해를 행복하게 맞이하시기를 빕니다.


2004년 성탄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교구장 안명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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