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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성탄 대축일 담화문 - 인간을 먼저 사랑하신 하느님

posted Jun 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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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성탄 대축일 담화문

인간을 먼저 사랑하신 하느님



사랑하올 교우,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신 생명이시고 빛이신 아기 예수님께서 내리시는 평화의 축복을 받으시고 그로 말미암아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지난 대림절 동안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리며 묵은 땅을 갈아엎고 사랑의 씨앗을 뿌렸으나 별다른 소출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구세주께서 선물로 주시는 평화 대신 불화와 반목으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기대어 살아 온 삶의 뿌리가 여기저기서 무너져 내리는 좌절 때문에 아파하면서 살았습니다. 공생과 상생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분열과 혼란 속에서 살았습니다. 사람을 이토록 미워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을 만큼 증오와 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남은 것은 상처와 자괴감뿐입니다.

성탄의 기념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앙인들은 여전히 예수 아기의 탄생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해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의미를 제대로 헤아렸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조차도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겨야>(루카 2,19)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성대한 축제이기도 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당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예수의 부활에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1코린 15, 3-6참조).

하느님의 인간화
우리는 궁금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신 까닭이 궁금합니다. 왜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는지>(필리 2, 6-7) 궁금합니다. 왜 아기 예수님은 마구간을 빌려야 할 정도로 가난하고 초라하게 태어나셨고,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가지지 못한 자의 처지를 상징하는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고, 인간이 하느님이 되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이레네오)는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강생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이 하느님에게로 간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이 우리 안에 넘치게 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강생 사건은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1요한 4,16)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신원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믿음으로 자기 삶의 근본적인 결단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사상을 선택한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을 만난 결과입니다. 이 사건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요한 3,16)하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먼저 사랑하셨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실마리가 하느님의 사랑에 담겨있습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강생하시는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루카 17,33)는 말씀은 사랑의 본질과 인간의 삶의 본질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목숨을 내어 놓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어 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를 위해 나의 목숨을 내어 놓는 것은 사랑의 극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없더라도 행복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마치 인간이 없으면 영원히 불행할 것같이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영원한 세월을 살아 왔으면서도 인간 없이는 한 순간이라도 살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낮추어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자가 가장 위대한 자임을 헤아리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내어 주는 자가 바로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니고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뒤늦게 감지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히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사랑입니다. 하느님 자신을 위해 남겨두고 유보시킨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어지지 않고 전달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근원적으로 아무 것도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밖에 할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거절이 죄이고, 사랑하지 않음이 죄라는 것도 헤아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도록 그렇게 지음 받았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까닭도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나의 생존의 유일한 이유이고, 나의 단 한 가지 직업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은 시간은 낭비된 시간입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사랑의 능력, 놀라운 자기 증여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채 살아왔습니다. 이제 사랑의 능력을 기억에 떠올려 사랑의 삶을 살기를 다짐합니다.

사랑의 사회성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 세상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느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사회성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이웃과 동일시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이웃을 외면하면 하느님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1요한 4,20참조).

사랑의 실천 - 섬김과 봉사
우리가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홀로 간직하지 말고 이웃에게로 확산시켜야 합니다. 친교와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의 모든 활동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모든 사목 활동의 지향점 역시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은 신자 각자의 개인적인 활동을 통해서는 물론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도 실천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은 성사 거행, 말씀의 선포와 더불어 교회의 본질적인 영역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교회는 성사와 말씀을 소홀히 할 수 없듯이, 사랑의 실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일종의 복지 활동이 아니라, 교회 본질의 한 부분이며, 교회의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필수적인 표현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기회가 닿는 대로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갈라 6,10참조). 이처럼 사랑은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부단하게 나를 열어 놓아야 합니다. 나를 폐쇄시키고서는 사랑의 나눔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사랑을 통해 자라고 확산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가장 정의로운 사회에서도 사랑은 필요합니다. 위로와 도움을 찾는 고통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외로움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인간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갈망에 말을 건네는 상황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불러일으키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지 않는 상황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 역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허물 많은 우리에게도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아기의 모습으로 자신을 비우시고 겸손한 모습으로 태어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느님의 사랑을 감지하는 그 믿음이 사랑을 낳습니다. 인간은 사랑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지만 사랑만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바로 그 자리가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는 곳입니다. 우리를 아프게 한 사람에게 따듯한 손을 내어주는 그 순간이 바로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모든 이웃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이웃들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그 순간이 바로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그 만남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의 힘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 모두와 우리 교구에 보내주신 하느님의 각별한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교구 설정 40주년을 위해 협력해 주시고 격려를 보내주신 교구민,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축복 속에 그분께서 허락하시는 새해를 행복하게 맞이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06년 성탄 대축일을 기념하면서

교구장 안 명 옥 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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