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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 부 활 대축일 담 화 문

posted Jun 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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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부 활 담 화 문

천주교 마산교구

무력하게 죽으신 하느님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교우,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

생명이 움트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 신앙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대축일을 경축하고 기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부활을 준비하면서 사순시기를 보냈습니다. 참회와 고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흙으로 돌아 가야할 인간의 운명에 대해 깊이 묵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모든 교우, 수도자 그리고 성직자 여러분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가득 받으시고 기쁜 부활 축일을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필리 3,10-11) 기원합니다.

하느님의 수난

우리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시고,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 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신 하느님을 믿습니다(1코린 1,26-30 참조).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바라보시며 상처받으시고 수난을 받으십니다. 이 세상이 권력을 향한 강한 욕망 때문에 인간의 영혼을 부패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감사 대신 원한, 용서 대신 복수, 치유 대신 상처, 자비 대신 경쟁, 협력 대신 폭력, 사랑 대신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 대신 전쟁, 미움, 적대감으로 이 세상은 얼룩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웃의 생존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사랑을 기대했는데 비난과 비판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기”(이사 29,13)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상심과 수난을 넘어섭니다.“그분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 갑니다.”(시편 30,5) 그분은 너그럽고 자비로운 분이시고,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분이십니다(요엘 2,13). 그분은 마음이 모질지 못하여 무서운 얼굴을 보여 주지 못하는 분이시고, 아무리 화가 나도 그 마음을 언제까지나 지니지 못하는 분이십니다(예레 3,12.14 참조). 우리의 죄가 진홍같이 붉고 다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게 만들고, 양털처럼 만들어주는 분이십니다(이사 1,18 참조). 또한 그분은 우리의 악행을 구름처럼 흩어 버리시고, 우리의 죄를 안개처럼 날려 보내십니다(이사 44,22 참조).

하느님의 무력함 - 십자가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들과 그들의 생존을 파괴하는 권력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권력으로 맞서지 않으시고 대신 무력함을 선택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비 가운데 악의 권력을 없애기로 무력함을 선택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무력한 모습으로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기로 결단하셨습니다. 이 결단을 통해 권력의 환상을 폭로하시고, 세상을 지배하는 어두움의 권세를 물리치시기 위해 그리고 분열된 인류에게 새로운 일치와 평화를 가져다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거처하십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권능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분의 권능은 근원적으로 섬김이고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력함으로 권력의 장벽을 극복하시기 위해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육화와 강생의 신비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이야기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적대자들의 모욕과, 상심과 번민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버림받은 상태에서 무력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분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기셨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실패자로 보였습니다. 이로써 말구유에서의 무력함이 십자가의 무력함으로 건너갔습니다. 십자가의 무력한 죽음은 폭력과 부조리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선택하신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사랑하기를 거부한 우리 모두에게 균형을 주기 위한 봉헌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는 한 영원히 십자가에 처형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사랑입니다. 사랑밖에 할 줄 모르는 존재이십니다. 인간 역시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사랑받는 존재로 태어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인간을 사랑하셨고, 인간이 죽은 후에도 인간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사랑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진리를 내포하고 있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의 영원성에 속해있고 이 지상에서의 삶이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일 뿐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은 시간은 낭비된 시간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믿기 위해 그리고 이웃들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깨닫도록 파견되었습니다. 모든 인류가 사랑이신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사랑의 무한성 안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력함의 삶 - 부활의 삶

우리가 무력하고 연약한 삶을 살 때 부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력하게 태어나셨고, 무력한 삶을 사셨습니다. 끝내 무력하게 죽으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항상 약한 사람과 작은 사람을 돌보셨습니다. 굶주린 사람, 죽어가는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자신과 동일하게 여기셨습니다. 화해와 평화를 종용하시고 복수를 멀리하셨으며, 성공과 명성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억울하게 묶인 사람을 풀어주시고, 압제받는 사람들을 석방하시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십니다.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혈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십니다(이사 58,6-7 참조). 그분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시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십니다(이사 2,4 참조). 우리는 이러한 무력함을 통해 형제자매가 되라는 부름을 받았고, 우정과 사랑의 유대를 깊게 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 용서하며 화해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력한 예수님을 통해서 권력과 권세를 무장해제 시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을 약한 데에서 완전하게 드러내 보이시고(2코린 12,9 참조),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달갑게 여기도록 섭리하시고, 우리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다(2코린 12,10 참조)는 사실을 보증해 주십니다.

무력하고 연약한 삶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조종하고 통제하도록 방관하는 세속적인 무력함이나 연약함이 아니라,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고, 이 땅을 새롭게 하는 하느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도록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연약함입니다. 이 능력은 하느님의 능력,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무력함과 연약함은 권력의 싸움에 매여 있는 인류를 보면서 상심하고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무력한 모습으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심으로써 세상과 교회의 권력 싸움을 어떻게 폭로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실상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능력이 많은 분이십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함부로 권능을 행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능력과 관련하여“여기 서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마르 9,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나와 모든 사람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루카 6,19). 이처럼 예수님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가득 찬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할 능력, 치유할 능력, 생명을 주실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아울러“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과 능력을 받았다”(마태 28, 18).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가난합니다. 슬퍼합니다. 상처입고 아픔 중에 살아갑니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릅니다. 폭력에 시달립니다. 다름과 차이 때문에 핍박받고 있습니다. 자비와 순수한 마음을 원하고, 평화를 이루는 일에 헌신하고 싶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고, 배가 고프고 목마른 채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고, 끝내 하느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증해 주시는 참된 능력과 권능을 체험하며 살고 싶습니다. 세상의 권력에 의한 능력이 아니라, 무력함과 연약함을 통한 능력으로 건너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작은 줄에 매달려 흔들리며 꼭두각시로 살아가도록 부추기는 권력이 아니라, 무력함으로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능력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데에 투신하고,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선포하게 하는 능력에 의지하며 살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능력에 기대어 서고 싶습니다.

분열시키는 권력으로부터 일치시키는 능력으로, 파괴적인 권력으로부터 치유하는 능력으로, 마비시키는 권력으로부터 권능을 부여하는 능력으로 건너가면 부활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살고 싶습니다.“어떤 사람보다 수려하신”(시편 45,3) 분께서는 또한“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는”(이사 53,2) 분으로 죽으셨지만, 사랑의 진리가 죽음의 어두움마저도 부활의 빛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하느님을 믿게 될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다는 것을 믿으며 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부활하신 분께서 내리시는 축복을 가득 받으시고, 서로 사랑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 부활한다는 사실 때문에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구민 모두가 죽음을 넘어 생명의 부활로 건너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신앙 고백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끼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부활 대축일을 기념하면서

교구장 안 명 옥 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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