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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해방 당시 마산의 인구는 6만명 정도였다. 그러나 1년 뒤에는 9만에 가까운 인구로 늘어났다. 해방과 더불어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대거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 후 6.25 전쟁이 끝난 뒤 신마산일대에는 유입 인구가 늘어났고 그 속에는 신자들도 많았다. 이렇게 되자 당시 마산성당(현 완월동성당)의 김영호(멜키올) 신부는 신마산지역에 본당설립 계획을 가졌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이후 김두호(알로이시오) 신부가 부임하여 신마산지역 성당 설립계획을 당시 부산교구청에 보고하게 되었다. 이제 막 첫발을 디디게 된 부산교구는 마산지역의 교세확장을 위해 김 신부의 청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신설본당 설립의 책임을 맡겼다. 이렇게 해서 신마산성당(현 월남동성당) 신설은 본격화되고 건립기성회를 조직하였다. 이 계획은 정삼규(요한) 신부가 부임한 이듬해인 1958년 기성회를 통해 부지를 매입하면서 본격화되었는데, 이 땅이 현재의 월남동성당 부지이다. 원래 이 땅은 일제시대 식산은행(현 제일은행)이 있던 곳이었다. 현재 성당 마당의 화단에는 식산은행 당시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새로 구입한 성당 터에는 사택과 함께 여러 채의 건물들이 있었다. 우선 사택에는 성당 터를 관리할 사람을 상주시켰고 본 건물은 수리하여 임시성당으로 개조했다. 그리고 주일이면 그곳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즉 공소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성지여중고 내에 있던 성지유치원을 이곳으로 이전하여 운영하였다. 이것이 월남동성당 소속 성지유치원의 시작이다. 1954년 성지여중고에서 시작된 성지유치원은 많은 원생들을 배출하며 명문 유치원이 되었다. 그러나 1987년 마산시의 도로확장공사 관계로 유치원 건물이 헐리게 되는 것을 계기로 성지유치원은 폐원되었다. 그 후 안달원 신부는 완월동성당의 부흥에 힘쓰는 한편 신마산성당 신축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1962년 10월 월남동성당 신축기성회를 새로이 조직하여 첫 모임을 가졌다. 첫 모임은 성지여고 강당 1층에서 있었는데 완월동성당은 그대로 두고 월남동에 또 다른 성당을 짓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64년 12월 본당이 설립되었고, 1965년 1월 초대 주임 유재국(바실리오) 신부가 부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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