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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광지 가타리나

고색창연한 역사를 지닌 함양성당을 찾았다. 시골답지 않게 굵직한 건물들이 시선을 끈다. 앞쪽에 자리한 80주년기념관이 있고, 몇 걸음 들어서면 100주년 기념성전이 위용을 자랑한다. 108년이 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발자취이다. 성모 성월을 맞이하며 ‘원죄 없으신 잉태’를 본당주보로 하는 이 성당의 뜰은 성모님 미소로 온화하다. 

 

210509 함양성당전경(홈피용).jpg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노력
오랜 역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움을 축구하려는 노력이 함양성당에는 있다. 2019년에 부임한 신호열 요셉 신부는 본당의 상황을 이것저것 지켜보면서 사목계획을 세워 알차게 실행하려고 구상했다. 노인대학을 여는 세밀한 계획이 코로나라는 벽에 막혀 무산되고, 성무일도로 시작하는 미사에 대한 계획도 무산되고 말았다. 한풀 꺾이긴 했지만, 위기를 헤쳐 나가는 방안을 마련했다. 작은 성가대를 운영하는 일이었다. 평일미사에는 생활성가대가 노래하고, 주말 저녁미사에는 떼제성가대가 노래한다. 인원은 각 3,4명 정도이지만 활동하는 사람도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도 기쁨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이다. 주일미사에는 좀 더 많은 숫자의 성가대가 방역수칙을 지키며 노래한다. 


방송미사도 지난해 코로나로 위기가 닥친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잘 진행하고 있다. 신통하게도 중고등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방송 작업에 참여하고 있어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크다. 청소년들의 발걸음이 끓이지 않는 것으로도 큰 축복이다. 그리고 성전 양쪽에 설치된 화면으로 매월 있었던 행사나 소식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신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작은 실행을 통해서라도 침체된 분위기를 줄이고 주님을 찬미하려는 노력이다.


사람과 건축물로 이어온 함양성당의 역사
정광수 도미니코 사목회장은 3대째 내려오는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도밍고’로 불리며 자라고, 살아온 오롯한 함양사람이다. 함양을 떠나 산 것은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군복무를 한 3년뿐이라는 그다. 1913년 대구대목구 관할 함양본당 설립에서 이어진 역사는 선대의 어른들에게 전해 들었고, 1959년 그가 태어나 지금까지 부산교구를 거쳐 마산교구에 이르는 본당의 역사 속에서 줄곧 함께했다.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복사를 섰고, 청년회 활동을 하며 주일학교 교사도 맡았다. 레지오 단장, 꾸리아 단장 등등 온갖 활동을 거쳐 사목회장을 맡고 있으니 함양성당 역사가 
그의 삶 속에 새겨져 있다. 100주년 기념성전을 지을 때도 건축위원으로 한몫을 톡톡히 했다.

 

210509 함양성당 초기 고딕성당(홈피용).jpg

초기 고딕성당


황인균 요셉 신부와 신자들은 100주년 기념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땀을 쏟았다. 이것으로 함양성당 세 번째 건축의 역사가 되었다. 초대회장이 향교의 한옥 건물을 매입하여 1936년까지 사용한 후, 박재수 신부가 1937년에 시작하여 원교에 고딕식의 첫 성당 건물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김석좌 신부 부임 후 성당이 읍 중심에서 떨어져 있어 사목상의 불편함이 많다며, 최학조가 헌납한 교산리 현재 부지에 1970년 두 번째 성당을 건축했다. 그다음이 100주년을 일 년 앞둔 2012년에 세워진 100주년 기념성전이다. 2011년 초 기공식을 하고 1년 반에 걸친 건축기간 동안 사제관과 수녀원은 아파트를 빌리고, 읍사무소 강당에서 주일미사를 드리면서 건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이 물결을 이루었다. 레지오 등 각종 모임은 각 가정에서 치러졌으며, 여러 가지 난관을 뚫고 대동단결하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들
코로나로 인한 이 느슨한 시간을 계기로 삼아 소홀했던 일을 돌아보게 되었다. 100주년을 치르면서 숨 가쁘게 달렸다가, 기진맥진 주저앉았던 시간을 수습하는 기회가 되었다. 성당 담을 허물면서 군에서 설치했던 조경수가 마뜩찮았는데, 늘 말만 하고 바라보았던 조경사업도 했다. 수종을 바꾸어 꾸미고 성당 분위기를 살렸다. 올 가을에 있을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에도 대비하여, 엑스포를 찾은 외국인들이 성당에 들릴 것을 감안하고 군에 요청하여 영문표기로 된 안내문을 입구에 세웠다. 


한편, 창고에 오래 방치되었던 최학조 초대회장 공적비와 첫 번째 성당을 지은 박재수 신부 공적비를 찾아내 깨끗하게 손질하고 성당입구에 세워 신자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했다. 최학조 안드레아는 공소회장 때부터 사가를 공소로 이용했고, 본당설립 후에도 초대회장을 맡아 원교에 있는 향교의 한옥건물을 매입하여 희사했으며, 여기서 함양성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진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하고 본당회장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제5대 박재수 요한 신부는 최학조가 죽기 직전 기부한 땅에 성당을 신축했다. 1940년에 완공한 성당은 105평의 고딕식 건축물이었는데, 이 인근에서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건축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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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비


함양성당은 운산공소, 문정공소, 공배공소를 관할하여 돌아가며 매월 1회 공소미사가 있다. 저녁미사 후에 공소 신자들과 조촐하게 음식도 나누며 화기애애했던 공동체 시간이 코로나로 위축되긴 했지만, 공소 방문은 언제나 초기 교회를 느끼게 하는 친밀함이 있다.


시골인 듯 시골 같지 않은 시골본당이다. 유아세례도 심심찮게 있고, 중고등부 학생들이 유튜브를 찍어 올려 외국에서도 함양성당을 찾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이 시기에도 대부분 가정이 교무금을 미루지 않는 것 또한 자랑인 함양성당은 어른들이 솔선수범하는 역사가 이어져,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오랜 역사는 값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새롭게 싹이 돋고 자라야 된다는 것을.

 

210509 함양본당 유아세례(홈피용).jpg

유아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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