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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준호 라파엘

211010 호계성당 비석(홈피용).jpg

 

귀연, 나눔의 귀한 인연이 시작되다
호계성당 성전으로 가는 초입에 비석이 하나 서있다. 중리공소에서 호계본당이 있기까지의 소중한 약사가 기록되어 있다. 비석을 지나 램프를 돌아서 오르고, 생동감 있는 호선을 따라가면 편안함이 스며든다. 여느 성당이 다 그렇겠지만 호계성당의 성전은 더욱 차분하게 느껴진다. 자리들이 질서 정연하게 부채꼴로 펼쳐진 곡선들과 십자가의 직선이 합일되고 시선이 집중된다. 오로지 십자가로 눈과 마음이 향하는 가운데 성수같이 맑은 신심이 샘솟는다. 성당 건축물에서 배어나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스토리, 사람의 향기 넘치는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호계본당 주임 신부와 사목회장, 그리고 함께한 교우들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때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귀연 베로니카 할머니가 중리공소를 짓기 위한 부지를 내놓았다. 이른 새벽부터 생선장사를 하며 어렵사리 장만한 땅이었다. 그렇게 지어진 공소가 18평이었지만 베로니카 할머니는 이후에도 558평의 밭 부지를 봉헌하였다. 모든 것을 인간에게 오롯이 내어주신 예수님을 닮은 덕행이었다. 베로니카 할머니의 고귀한 나눔의 시작 없이 어찌 호계성당의 역사를 거론할 수 있겠느냐는 정윤호 베드로 신부의 말이 이어진다. 성당에 대한 역사인식과 애정이 넘친다. 마르지 않을 샘물의 첫 마중물은 베로니카 할머니의 고귀한 나눔으로써 시작되었다.


신앙공동체의 꽃이 활짝 핀 호계성당
1991년은 호계본당으로 승격되던 해다. 마침 교구설정 25주년이었다. 1998년 11월에는 지금의 성전이 완공되어 봉헌식을 가졌다. 당시 성전기금 마련을 위해 벽돌 한 장 값이라도 더 벌고자 신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발 벗고 나섰다. 통닭집 폐유를 모아서 손수 비누를 만들었고, 그 비누를 팔기 위해 교구의 성당들을 찾아다녔다. 당시 30대 전후의 신자들은 직장생활과 육아를 하는 힘든 상황 속에서 비누를 팔러 다녔다고 문창복 엘리지오 사목회장은 회상한다. 올해로 30주년이 된 본당에 대한 감회가 무척 새롭다고 했다. 서로 격려하며 힘을 보태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이후로도 교우들의 동참은 계속되었다. 노출콘크리트 기법으로 성전 안팎을 짓는 과정에서 신자들은 직접 콘크리트물을 붓고 다지는 작업에 함께했다. 남의 일쯤으로 여긴다든지 ‘누군가는 해주겠지’ 하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성당엔 누수 한 번 없었을 정도로 신자들의 정성으로 빈틈없는 성당을 가꾸어 올 수 있었다.


2004년 또한 잊을 수 없는 해다. 삼계성당이 호계성당으로부터 분리된다. 본당 승격 후 13년이 흐른 즈음 내서 지역의 두 번째 성당이 탄생한다. 호계성당의 역사를 함께한 교우들의 감격과 자부심이 더불어 느껴지는 듯했다. 녹록치 않았던 시절을 함께하면서 짧은 기간 내에 분가를 이뤄낸, 말하자면 신앙공동체의 꽃이 활짝 핀 결실이었다. 삼계성당의 건립에는 모본당에서의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더해졌다. 큰집과 작은집을 칭하며 두 성당은 이후로도 단합대회 등 여러모로 함께하며 나란히 걸어왔다.


올해 본당설립 30주년의 해를 지내며 호계성당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정윤호 베드로 신부는 이제 50주년을 바라보며 지금의 신앙공동체는 어떤 마중물이 되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또 다른 베로니카 할머니가 되고자 하는 정신으로 살아야겠죠. 역사라는 것은 기술하는 사람에 의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잊힌 역사이고 인물이었던 베로니카 할머니를 재조명하며, 드러내지 않는 신앙인의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211010 호계 성전건립 미사(홈피용).jpg

성전건립 미사


드러나지 않아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드러내지 않는 삶’이라는 대목에서 사목 방향이 묻어났다. 작년에 성모의 밤 행사와 성탄절을 맞이하여 ‘한부모 가정 돕기’와 ‘생명터 미혼모자의 집 돕기’ 활동을 하던 일, 또 지역의 거점병원에 마스크를 나눠 주었던 사연들을 소개하였다. 밝히고 싶지는 않은 사연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말하는 것이며, 사진 같은 것은 애초부터 찍지 않았다고 했다. 애써 드러내려는 행동이나 수량으로써 부각하는 일은 중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 4단계가 되어 미사를 거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교우들이 주일헌금을 모두 보내왔다고 사목회 총무가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묵묵히 신앙생활을 지켜나가는 신앙인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 양적인 수치가 중요한 시대가 아님을 공감하였다. 코로나시대가 역설적으로 알려준 교훈일 것이라고 하였다. 묵묵하게 마음으로 이어진 신앙공동체의 존재가 그것이다. 


본당주보 ‘자모신 마리아’의 따뜻함을 따라 사목위원들은 성당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반갑게 먼저 인사하고 맞이한다. 사목회장은 본인도 처음 호계성당에 왔을 때, 반겨주며 레지오로 이끌어 준 그 시절의 선배들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각 신심단체를 통해 신자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로써 공동체 생활을 해 나가고 있기에 젊고 활력 있는 본당이라는 평을 듣는다. 


다시 램프입구의 비석에 서 보았다. 드러나지 않아도 향기롭게 우뚝 서있는 호계성당의 역사와 스토리가 있었다. 비석 앞에서 보았다. 이귀연 베로니카 할머니의 마중물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와 미래로 향하고 있음을. 

 

211010 호계성당전경(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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