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칼럼
2021.03.18 15:37

여성들이 쓰는 사회적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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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민아 마리아 교수/ 조지타운대학교

지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3월,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미국 뉴욕의 섬유공장 여성노동자들을 기리며 15만 명의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해 1909년 미국에서 처음 선포된 여성의 날은 1975년 유엔에서 3월 8일을 공식 여성의 날로 선포하기까지 여성의 인간 존엄성 보장과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투쟁해 온 각국 여성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덕택에 대부분의 행사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등 예년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지만 더 기발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다양한 기념행사들에 관한 기사를 읽고 사진을 보면서, 나는 얼마 전 발표된 교종의 새 회칙 “모든 자매형제들 (Fratelli Tutti)”을 생각했다. 회칙은 사회교리의 3대 원리인 공동선, 연대성, 보조성의 원리를 잘 담아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보조성의 원리와 연관해 대중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보조성의 원리는 국가, 교회 등 큰 기관이 시민 단체 등 작은 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고 격려하는 것으로, 상부 권력의 과도한 개입과 관료주의적 상명 하달을 막고 사회 구성원들의 자율적 참여를 증진시키는 원리다. 교종은 보조성의 원리를 들어 대중운동을 지지하며, 이를 ‘사회적 시인’이라 표현했다. 마치 시 한 편에서 하나하나의 시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운율과 의미를 만드는 것처럼, 자발적인 대중운동을 통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시어가 되고 행이 되고 연이 되어 하나로 어우러져 마치 기나긴 연작시처럼 서사가 생기고 이미지가 연결되고, 노래가 되며 사회적 연대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더 가혹한 고통의 세상에서 여성들이 쓰는 ‘사회적 시’란 어떤 것일까? 여성의 몸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것, 즉 남성들이 보고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여성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겠다.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학자들인 줄리아 크리스테바, 엘렌느 시수, 뤼스 이리가레이는 남자들, 아버지들이 만들어 낸 세상의 상징 질서와 언어가 여성의 경험을 담아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여성적인 글쓰기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폭력적, 위계적 언어, 이성적인 사고를 중요시하고 몸을 비하하는 언어, 나와 타자를 나누는 이분법적 언어 등이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떠받치고 있는 언어이기에, 여성의 언어는 이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몸과 느낌에 집중하는 언어, 완결적이고 단언적인 언어보다 열려 있는 언어, 비결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글, 답보다는 질문이 더 중요한 글, 말의 운동성과 리듬감이 살아 있는 글, 유머, 슬픔, 고통의 정서, 애매모호하고 모순적인 세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 남성들의 질서를 패러디하는 글 등이 이들이 말하는 여성적 글쓰기의 특징이다. 


나는 이렇게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몸으로, 여성의 언어로 쓰는 ‘사회적 시’를 우리 사회 여성들, 특히 두 그룹에서 발견한다. 한 그룹은 오는 4월 16일, 7주기를 맞지만 아직도 진상 규명이 되지 않고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어머니들이다. 세월호 가족들, 특히 어머니들은 참사 초기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지 상징적인 중심이 아니라, 운동의 주체가 되어왔다. 그들은 참사의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침몰의 원인이었던 규제 완화 폐기 등 투쟁의 쟁점들을 구체화하고, 국내와 국외를 오가며 세월호 기억 물품을 전달하고 기억 공간을 형성했으며, 고통을 딛고 성장했다. 삶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성찰했으며, 물질 만능주의와 개인주의의 폐해에 대해 반성했고, 세월호를 넘어서 다른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연대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죽음의 질서에 저항하고 있다. 혐오주의자들에게 끊임없이 공격의 대상이 되어 온 이 어머니들에게 많은 어머니들이 “저도 엄마예요”라는 말로 화답했고 함께 울었다. 이 어머니들은 가부장제가 규정한 어머니들의 이상이 아니며, 아버지의 통제 안에 머물러 집에 안주하는 어머니들이 아니고, 출산과 양육과 돌봄에 헌신하여 아버지의 존재 밑으로 숨는 어머니들이 아니다. 이들은 이웃의 어머니 아버지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는 어머니들, 우리 모두를 끊임없이 연대의 장으로 소환하는 어머니들이다. 어쩌면 이 어머니들은 예수의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 성모님을 닮았다. 성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고통의 현장에서 우리를 부른다. 수많은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거침없이 사회적 시를 쓰고 있다. 


또 다른 한 그룹은 미얀마의 여성들이다.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미얀마 반군부 비폭력 시위에 여성의 치마, 속옷, 생리대 등 여성 용품이 저항의 수단으로 등장했다.  군부의 전방위적 폭력에 맨몸으로 맞서다시피 하는 미얀마 국민들이 타메인, 혹은 사롱이라고 불리는 여성 전통 통치마와 생리대, 속옷 등을 빨랫줄에 널어 높이 걸어 놓는 것이다.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는 여성의 신체를 가리는 데 사용되는 물건을 걸어 놓은 빨랫줄 밑을 지나가는 남성은 남성성과 힘과 명예를 잃고 불운을 맞는다는 미신이 있다. 현명하고 용감한 미얀마의 여성들은 이를 역이용하여 시위의 방위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타메인 혁명’이라는 이름을 걸고, 치마로 만든 깃발을 들고 여성운동과 반군부 폭력시위가 함께 진행되기도 했다. 미신을 믿지 않는 젊은 남성들도 이에 부응하여 타메인을 몸에 두르고 시위에 나섰다고 한다. 총을 들고도 천 쪼가리 치마가 무서워 벌벌 기는 군부의 모습이 우리 시대 가부장 제도의 시대착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가부장제의 상징들을 패러디하고 비틀어 평화를 수호하는 깃발로 사용하고 있는 미얀마 여성들의 사회적 시는 어떤가? 


가부장제의 유물을 아직도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교회에서 교회 여성들이 써야 할 사회적 시는 어떤 것일까? 교회가 여성의 생존권과 사회적 권리를 위해 힘쓰고, 교회 내 여성의 지도력 또한 고민하게 되기를 염원하려면 어떤 시를 써야 할까? 우리는 여성의 언어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여성의 삶과 역사를 공부하는 우리는 여성학을 얼마나 알고 있고, 여성의 눈으로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의 세상을 공부하는 여성신학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여성부제직에 대한 논의가 물꼬를 텄으니 연구도 여론 형성도 힘차게 일어나야 할 텐데, 우리는 얼마나 준비를 하고 있을까? 미세한 희망을 무시하지 않고, 별 볼일 없다, 가능성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미리 포기하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은유를 만들고, 언어를 다듬어 사회적 시를 써보는 것, 작은 움직임이라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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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보호를 위해 길가에 걸린 미얀마 여성들의 치마(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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