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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이진수 스테파노 신부
엘리야의 인생은 두 개의 산 사이의 도정으로 규정된다. 이 도정에 대해 기술하는 열왕기 상권 17~19장의 장면에 카르멜산(18장)과 호렙산(19장)이 등장한다. 오늘 독서 장면의 공간적 배경은 해당 두 산 사이에 놓인 광야이다(19,4-8). 엘리야는 카르멜산에서 내려와 호렙산으로 향하고 있다.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 제일 정점을 찍은 카르멜산에서 이제 내려와야만 한다. 카르멜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burn-out 되어 이제 한없이 나락으로 추락한다. 그의 상태는 주님께 죽기를 간청하기에 이른다. 잠으로 표현되는 절망 한가운데서 천사가 나타나 빵을 건네고 다시 일어서게 한다. 다시 한번 산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이번에는 자신이 원하는 모양새를 훨씬 넘어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카르멜산에서는 ‘불로 대답하는 하느님’(18,24)을 만났지만, 호렙산에서는 ‘불이 지나가고 난 뒤’ 다가서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19,12). 엘리야의 인생 도정의 출발점인 가뭄은 자연에 엄습한 불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연의 불로 인한 기근이 문제였다(17,1). 엘리야 스스로가 빵이 없어 죽을 처지였다. 그때 주님께서 까마귀를 시켜 엘리야에게 빵을 보내신다(17,4.6). 유다 전통에 의하면, 해당 ‘엘리야의 까마귀’(히브리어로 Oreb)는 노아의 홍수 때 사십일 간 내린 비가 멈춘 후 땅이 말랐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방주 밖으로 보낸 바로 그 까마귀이다. ‘밖으로 나가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했지만’(창세 8,7)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방주로 되돌아(8,11) 온 비둘기와는 달리 다시는 방주로 되돌아오지 않은 그 까마귀이다. 이제 그 까마귀가 입에 빵을 물고 온 것이다. 엘리야 역시 자신의 ‘방주’에서 나와 온 세상에 빵을 주어야만 한다. 비가 내려 가뭄에 의한 기근이 해결되어야만 한다. 이는 사렙타의 과부 이야기에서 미리 선취된다(17,8-24). 카르멜산에서는 불의 문제가 불로 해결된다. 가뭄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18,41-46). 그런데 이제 정작 엘리야 자신이 문제이다. 온 세상의 기근 문제를 해결한(불의 문제를 불로 해결한) 자가 다시 (자신의 불 때문에) 굶어 죽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빵을 주시고 ‘생명의 빵’인 당신 계명을 선사하신 호렙산으로 나아가게 하신다.

호렙산에서 엘리야 자신의 가뭄이 해결된다. 엘리야는 그때까지도 불로 가득 차 열 받아 있었으며 ‘불로 대답하시는 하느님’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야의 마음에 조용히 비가 내린다.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열심히(열 받을 만큼) 빵을 찾아 헤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주셨다.’(요한 6,41.50-51) 오늘 복음 장면에서도 사람들은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만나 자신 안에 모시게 된다. 더 이상 불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인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 그리고 온갖 악의’로써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할’ 이유가 없다(에페 4,30-31). 그러한 불로써 스스로를 태울 이유가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쩌면 또 다른 엘리야이다. 온 세상의 기근을 해결할 성체를 우리 안에 모셨음에도 정작 스스로는 계속 불 속에, 기근 속에 처한 채 다른 빵을 찾아 열심히 왔다 갔다 하는 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이미 burn-out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 안에 오늘도 여전히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서 들어오시고 성령의 비가 내린다. 다시 일어나 나 자신의 ‘호렙산’으로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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